좋은 말씀/이재훈목사

거짓은 가정을 무너뜨린다 (창세기 27:1-10)

새벽지기1 2017. 5. 6. 08:56


가정에 거짓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정 안에 진실만이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정 안에서 가면을 쓰고 있다면, 가면을 벗겨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지만 가정 안에서는 가면을 벗습니다. 그래서 밖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달라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가족들 앞에서도 가면을 쓰고 있는 경우입니다. 상처와 죄로 인해서 가족들 앞에서도 진실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속고 속이는 야곱의 가정

 

뜻하지 않게 가족들 앞에서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가족들에게 의도적으로 가면을 쓰는 경우입니다. 사탄은 가정이 행복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이 깨지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깨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족들 간에 진실하지 못하면 행복은 깨지고 관계는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족 간에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을 조사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쇼핑을 하고 “싸게 주고 샀어”이고, 남편이 아내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오늘 일찍 들어갈게”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딱5분만 더 잘게요”이고,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입니다. 사실 이런 말들은 선의의 거짓말입니다. 거짓이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악의적인 거짓말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깨지고 맙니다. 야곱의 가정을 보십시오.

야곱의 가정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형제가 불행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형제는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사고파는 불행한 거래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족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일을 하면서 관계가 무너지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창세기 27장에는 가족 간의 대화가 여섯 번 나오는데 이 대화들은 모두 두 사람이 나눈 대화라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이삭의 편협한 생각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 이삭과 야곱,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 리브가와 이삭의 대화가 창세기 27장 전체에 걸쳐 등장합니다. 창세기 27장에 두 사람만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간에 갈등과 분열의 벽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자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에서인 것처럼 속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야곱이 에서인 것처럼 속여 축복을 가로채려는 의도입니다. 야곱은 두려워서 주저하지만 리브가의 압박에 결국 계획대로 이삭을 속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에서라고 생각해 에서에게 줄 축복을 야곱에게 줍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삭과 에서가 분노하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계획을 알아 챈 리브가는 야곱에게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라고 합니다.

“이삭이 늙어 눈이 침침해져서 잘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가 맏아들 에서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에서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삭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는 네 무기인 화살통과 활을 갖고 들로 나가서 나를 위해 사냥을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너라. 내가 먹고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고 싶구나’”(1~4절). 본문에 나타난 이삭의 문제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이삭은 에서를 은밀하게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축복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족장들의 문화에서는 자녀를 축복할 때 온 가족을 불러 모읍니다. 신명기 33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후에 모든 족장들이 온 가족들을 불러 놓고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상식적인 문화였습니다.

한 사람을 축복하더라도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에게만 은밀하게 축복을 주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삭의 편협한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은밀하게 축복을 주려는 것은 그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분별력 잃어버린 이삭  두 번째 이삭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분명 리브가에게 틀림없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에서만 축복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행한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불순종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자리 잡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항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삭은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나 상식, 자신의 선호도, 편애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감각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1절을 보면 그의 눈이 어두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삭을 쉽게 비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약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 세계관과 문화에 반대되는 것이라면 쉽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삭처럼 우리의 생각이나 고집, 문화에 집착하지는 않을까요. 우리도 이삭처럼 불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이삭의 사랑

 

세 번째, 이삭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도 에서를 조건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엄숙하고 장엄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삭은 축복을 줄 때조차 맛있는 고기가 있어야만 축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축복 이전에 조건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 사랑인지 모릅니다.

사실 아들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여긴 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삭이 끝까지 조건적인 사랑과 거래를 통해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삭은 ‘좋아한다’ 혹은 ‘사랑한다’는 단어를 자녀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고기에게 사용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사랑한 것입니다.

 

영의 음성을 듣는 귀

 

네 번째 이삭의 잘못은 믿음으로 인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조급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곧 죽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삭은 180세에 죽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4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이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영적 분별력이 흐려져 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굉장히 조급해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이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팔에 염소 가죽 털을 붙인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조급함 때문입니다. 이삭이 어떻게 속는지를 보십시오.“그러자 이삭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내가 너를 좀 만져 보아야겠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알아보아야겠다.’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자 이삭이 야곱을 만져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 야곱의 손이 그의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이삭은 알아보지 못하고 야곱을 축복했습니다”(21~23절).

얼마나 바보 같은 아버지입니까. 사람털과 동물 털도 구별하지 못하고, 야곱의 음성을 듣고 도 에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여러분, 이삭처럼 감각에 의존하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감각보다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합니다. 귀로 영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영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육신에 이끌리게 됩니다.

 

대화단절로부터 문제 시작

 

믿음은 우리의 감각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믿음이 약해지면 감각을 의지하며 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삭처럼 말입니다. 이삭의 가정이 깨지게 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리브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리브가의 문제는 남편을 속이기 위해 거짓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엿들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리브가가 남편의 말을 간접적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녀를 축복하기를 원하면 아내와 가장 먼저 상의를 하지 않습니까.

이 부부는 서로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부부문제는 대화가 없어지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남편의 말을 들은 리브가는 다급해졌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적인 욕심이 더 앞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꾀를 만들어서 남편을 속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라면 남편을 속여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을 무시하고 남편과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교회에 헌금을 하고 싶은데 배우자가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민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고민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재량껏 헌금을 할 수 있다면 배우자가 모를지라도 헌금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물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부부가 함께 의논해야한다면 배우자를 속이면서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앙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주는 축복의 중요성

 

리브가는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이삭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자고 남편을 설득했어야 는데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남편을 속인 것입니다. 리브가의 선택은 잘못되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 행세를 하라고 사주했습니다. 

“야곱의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그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여라. 가서 염소들을 끌고 오너라’”(13절).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저주는 자신이 선택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만 저주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고 야곱만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 가족 모두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목적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자녀에게 거짓을 행하라고 사주한 어머니의 행동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삭의 가정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영적 능력도 없고, 분별력도 없는 이삭에게 축복을 받아야 했을까요. 당시 아버지의 역할을 제사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당시 아버지가 하는 축복은 그대로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도 일어난 것입니다.

 

대물림 되는 거짓말

 

뒤늦게 이삭과 에서가 리브가와 에서에게 속은 것을 알았습니다. 에서가 이삭에게 자신에게도 축복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주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이삭이 에서에게 줄 축복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야곱을 불러 너에게 준 축복을 취소한다고 하면 되겠지만 당시에는 한 번 뱉은 말의 효력이 강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말 한마디의 효력이 강력했던 그 시대를 그리워해야합니다. 말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세대에 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말의 힘을 회복시켜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자녀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축복이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이삭과 에서의 영적인 무능력과 리브가와 야곱의 거짓말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삭의 가정에서 생긴 거짓말의 기원은 아브라함 시대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바로가 자신의 아내를 탐내자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은 반은 거짓이고 반은 사실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였기 때문에 완벽한  거짓말은 아닙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도 그랄왕 앞에서 리브가가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이 거짓말을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가르쳐준 것일까요. 아닙니다. DNA속에 거짓의 영이 흐르는 것입니다.

이삭의 말은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리브가는 누이가 아닙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누이긴 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브라함과 사라보다 더 큰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리브가가 거짓말을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이후에 그들의 자손들도 거짓말을 합니다. 야곱의 자녀들도 거짓말을 했고, 그렇게 순수하던 요셉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 세대에서 거짓말을 끊지 않으면 자녀들 세대에서는 거짓말의 수위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거짓말이 대물림 되어서 우리의 자손들이 우리보다 더 큰 거짓말을 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진실한 가정을 위한 기도

 

야곱의 가정은 거짓말로 인해서 가족 모두가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 가정에서 승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고,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 다니게 되었습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삭에게 축복을 받은 야곱이 도망 다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이 받은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짓은 행복해야 할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 가정에 거짓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정 안에 진실만이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정 안에서 가면을 쓰고 있다면 가면을 벗겨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잠언에 아굴이라는 사람의 기도가 나오는 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주께 두 가지를 구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그것들을 이루어주옵소서. 허영과 거짓을 내게서 멀리하시고 내게 가난도 부도 허락하지 마옵시고,오직 내게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여주옵소서. 거짓을 내게 멀리하게 하옵소서. 내 가정에 거짓이 틈타지 못하게 하옵소서. 가족 간에 거짓말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가족 안에 거짓의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영적으로 보호하고,우리의 가정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도록, 기도하는 5월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