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신앙은 영적 경주다! (고전9:24-27)

새벽지기1 2017. 3. 27. 14:54


본문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유)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서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3월도 한 주가 남았습니다.

새내기들에게는 서서히 대학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질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주부터 3주간 영적 삶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삶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신앙은 영적 경주다!’

둘째는 신앙은 영적 농사다!’

셋째는 신앙은 영적 전투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신앙은 영적 경주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영적 경주이며 신앙인은 영적 경기자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경기장에서 경주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여기 <운동장>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헬라어로 '스타디온'입니다.

스타디온은 원래 200m의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였습니다, 이것이 후대에 200m의 규격화된 경기장을 만들면서 오늘날의 스타디움이라는 단어로 굳어진 것입니다.

당시 고대 유럽 사회에서는 운동 경기가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분을 차지했는데

고린도에서는 매 3년마다 올림픽과 같은 '이스티미안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이 경기의 주요 종목은 경마, 육상, 격투기 등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경주자처럼 다름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론


그러면 우리가 영적 경주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영적 경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24)

 

다시 말해서 경기자는 한 눈을 팔거나 나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여기서 경기자는 육상선수를 말합니다.

육상 선수 중에도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마라톤선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나옵니다.

바로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는 자가 하나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서 사도 바울이 하고자하는 말은 그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 받은 성도가 어떤 자세로 구원 그 이후를 살아야 하느냐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가 아니라

이와 같이 다름질 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태도는

경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 속에 전심전력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15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여기서 전심 전력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온 마음과 온 힘을 한곳에 모아 일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해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 일본과의 경기가 생각납니다.

당시 일본에 2-3으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물론 경기라는 것이 이기기도 하고 지지고 합니다.

심지어 역전승도 역전패도하는 것이 경기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전은 개관적으로 질 수 없는 경기였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월등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나라는 전반 20분까지 2-0으로 월등히 앞서 갔습니다.

하지만 후반 22분부터 14분 사이 내리 3골을 내주며 역전패했습니다.

저는 당시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 있는데 당시 기사 하나를 읽겠습니다.

<신바람이 화근이었다.

2-0으로 기분 좋게 앞서고 있던 후반 20분 이후

갑작스레 2골을 내주면서 경기장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이겼다'고 생각한 선수들의 안일함이 위기를 초래했다.


분위기가 좋을수록 냉정해야하는데 너무도 성급하게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고,

나아가 벌써 취한 이들도 있었다.

방심과 안일함의 후폭풍은 일본 잡는 DNA’보다 강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이 교훈을 뼈에 새겨야한다.>

이쯤되면 떠오르는 성경인물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믿음의 용장이자 이스라엘의 왕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궁과 광야에서 수 없이 많은 사선을 넘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국을 건설한 이스라엘의 초대왕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무너진 것은 바로 안일과 나태였습니다.

삼상11:2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그랬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최악의 오점이 기록되던 날 다윗의 모습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우리가 침상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아침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일어납니다.

정복 보다 수성이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믿음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의 경기가 연상 되지 않습니까?

전심전력했던 했던 거북!

그리고 안일과 나태에 빠졌던 토끼!

그렇습니다.

신앙은 영적 경주입니다.

신앙에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의 방심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 경기자인 우리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 경주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 열심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26)

 

그렇습니다. 신앙에서 열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방향입니다.

다음은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학생시절 겪었단 실화입니다.

서울역에서 경부선(수원행)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는데

하루는 내 옆자리에 계신 할머니 한 분이 기분 좋게 말했답니다.

아이고, 자리가 많아 정말 좋다

3

맞은 편 플랫홈에 거의 같은 시간에 문산가는 기차가 있었는데

먼저 그 문산행 열차가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께서 그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학생, 저 기차는 어디로 가나?’

문산행 열차입니다.’

할머니는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합니다.

아이고, 저 차를 타야 하는데.’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그런데 왜 이 차를 타셨어요?’

이 때 할머니의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그야 이 차에 자리가 많아서 탔지.’

결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 열차를 잘 못 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그럴 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바로 사도 바울 자신입니다.

사도행전9장은 사도 바울이 회심장입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유대교의 핵심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은 유대교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죽이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그 날도 바울은 다메섹에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열심은 있었지만 방향이 잘 못된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본문2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달리기 선수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격투기 선수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 어떤 달리기 선수도 방향 없이 달려가지는 않습니다.

그 어떤 격투기 선수도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지 않습니다.

달리기 선수나 격투기 선수 모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경기한다는 말입니다.

성도인 우리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란 인생의 목표 뿐만 아니라

신앙의 푯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관련하여 빌3:13-14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래전 고지전영화 내용 가운데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북한군 중대장이 국군포로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동무들이 왜 지는지 알아?

그건 동무들이 싸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야'

그랬습니다.

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왜 이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싸웠습니다.

남북 모두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경주자에게 있어 속도는 생명입니다.

하지만 방향일 잘못된 속도는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도'도 중요하고 '방향'도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 인생의 목표요, 방향이요, 삶의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예수님이 목표가 되고

삶의 이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 경주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엄격한 (자기 관리)영성 훈련을 해야 합니다.(25, 27)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김연아선수는 2013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당시 외신들이 반응은 이랬습니다.

<김연아 압도적 우승! '무결점 우승' '적수는 없었다' '여왕의 귀환 알렸다'

'홀로 다른 별에서 연기하는 것 같아' '우아한 기술로 관객 홀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사실 당시 내가 김연아선수에게 감동한 것은 그녀의 우승 때문만은 아닙니다.

김연아선수의 '자기 관리' 때문입니다.

김연아선수는 이미 그 전에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우승을 했습니다.

사람이 그 정도 성취했으면 충분히 안주할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선수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밴쿠버 올림픽 이후 김선수는 2년간 선수 생활을 접었었습니다.

그런 김선수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2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당당하게 세계정상에 우뚝 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경주자에게 있어 자기관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본문 2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이는 경주자로 비유된 성도가 평소 어떠한 훈련과 연습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은 체력이 많이 소모됩니다.

비운동선수도 잠시 체력소모를 하기만 해도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하물며 운동선수들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선수들이 모두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수는 경기에 나가 승리하기 위해서 평소 자기 관리를 합니다.

, 극도의 음식의 절제생활의 절제를 요구합니다.

특히 주목 할 것은 25절에 나오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는 말씀입니다.

절제라는 단어는 영어로 ‘self-control’입니다.

하지만 영어성경은 strict training(엄격한 훈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경주자에게 있어 최고의 자기 관리는 엄격한 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경주자인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훈련은 무엇일까요?

저는 경건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한신대 아침모임을 다녀오면서 감동했습니다.

가지원이 3월에 두 명씩이나 나온 경우는 지난 수년 동안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한신대 뿐만이 아닙니다.

경기대 수여대 한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캠퍼스 아침모임은 이렇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27절 말씀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절제)(이유)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 즉 절제한 이유입니다.

여기 나오는 몇 단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절제)함은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 피아조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눈을 의미하는 옵스

그리고 친다는 의미의 피아조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눈 아래를 친다입니다.

이는 격투기 선수가 싸울 때 목표가 되는 적의 급소인 얼굴을 가격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이런 모티브를 자기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싸움의 상대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이는 격투기 선수가 승리를 위해 상대 선수의 급소를 가격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시와의 부단한 싸움,

즉 극기와 절제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단어입니다.

경기나 전쟁에서 패자가 승자에게 무조건 승복(굴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도가 신앙 생활에서 영적 승리를 위해 육신의 욕망을 절제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6-17)‘

여기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가 바로 성령에 복종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 이유입니다.

여기서 도리어 버림이 될까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불합격격자가 될까라는 뜻입니다.

누구보다도 저와 여러분이 유념해야 할 경구입니다.

이 말은 이미 믿은 자가 구원에서 탈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참된 믿음이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신앙은 영적 경주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영적 경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4)

다시 말해서 경주자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경주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열심도 중요하지만 방향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26)

여기서 말하는 방향이란 인생의 목표 뿐만 아니라

신앙의 푯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엄격한 영성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5, 27)

우리 DFC는 여러분의 영성훈련을 도울 준비가 다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열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은 영적 경주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영적 경주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향방 없이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지금 허공을 치는 싸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목표가 되고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2017년에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목표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방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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