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서론
요즘 봄기운이 완연한 봄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 베란다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우리 집은 작은 정원입니다.
그 중에 사온 화분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 꺾꽂이를 하거나 잎 배양을 합니다.
이제는 아주 그럴 사한 작은 정원이 되었습니다.
농사 짖는 분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흙은 정직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봄이 상징하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파종한다’는 것 즉 ‘심는다’는 것일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씨를 뿌린 거지요.
파종 없는 추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영적 농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영적 농사를 짖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2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군사’다.(딤후2:4)
그리스도의 제자는 ‘경기하는 자’다.(딤후2:5)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는 ‘농부’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딤후2:6)”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신앙은 영적 경주다!’라는 제목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신앙은 영적 농사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본론
그러면 영적 농부인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첫째,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 7-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것’이며
‘육적 욕망으로 심고 영적 축복으로 거두려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의미는 무엇일까요?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은 ‘심은 종류대로 거둔다는 것’이며,
‘심은 양만큼 거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류대로 거둔다’는 말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벼를 심으면 벼가 난다는 것이며,
‘심은 양 만큼 거둔다’는 것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 맞습니까?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세상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학법칙’입니다.
1더하기 1은 2이며, 1곱하기 1은 1일이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1+2=3, 100×100=10,000 이런 것들이지요.
어쩌면 세상의 한 축은 이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는 ‘자연 법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섭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법입니다.
검은콩을 심으면 검은콩이 나고, 흰콩을 심으면 흰콩이 나는 법입니다.
만약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난다면 세상은 엄청 혼란이 초래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 질서있게 창조하셨습니다.
다음은 ‘영적 법칙’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아주 중요한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다윗과 골리앗 사건입니다.
누구도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년 다윗을 통해 적국의 거장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리셨습니다.
그 때 다윗의 고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삼상17:47)’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비단 다윗만이 아닙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9:11)’
다시 말해서 달리기 잘한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니며
힘이 세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공부 잘한다고 부자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일찍이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이것이 영적 법칙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님에도 이 세상에 속해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법칙 즉, 수학법칙, 자연법칙, 영적 법칙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 법칙 모두 하나님이 세상의 질서를 위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것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 농부인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둘쩨, 영적인 파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8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경 주석가 벵겔은 8절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육체의 밭에 심는 자’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성령의 밭에 심는 자’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1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렇습니다. 절대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반드시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반드시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위하여 심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성령으로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육체를 위해 심는 것’이며, ‘육체의 열매’를 거둘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갈5:19-22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현재적, 지속적, 회개 없이)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또 이렇게 선포합니다.
호세아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아멘!
여기서 ‘공의를 심는다’는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을 심고 생명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영적으로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정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봄과도 같은 지금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심을 계획입니까?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며,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을 위하여 거룩한 것만 심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영적 농부인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요?
▶셋째, 결실을 위해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점점 조급해지고 참을성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자신의 인내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잘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인내심을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까지 인내하지 못하는 우리의 조급성을 말해주는 유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1년에 거두려면 곡식을 심고
십년에 거두려면 나무를 심고,
백년에 거두려면 사람을 키우라.
그러나 우리가 심은 것은 ‘영생’과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중요한 태도 중 하나가 바로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믿으으로 살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주제의 책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의 또 다른 주제는 ‘믿음의 인내’입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그리고 야고보서 마지막장에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그렇습니다.
신앙에서 ‘믿음의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갈5:22)”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다림’ 즉, ‘인내’의 최대 적은?무의미‘다.-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의 꿈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도 수 천년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고난의 긴 터널을 ‘인내’로서 극복한 위인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의미를 안다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폭풍우를 이겨낸 농부가 풍성한 가을을 거두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믿음의 열매를 거두기까지
때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인내로 승리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청춘’의 뜻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푸른 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인생의 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 농부’입니다.
농부가 가을의 결실을 소망하고 봄에 파종하듯이
또한 여러분은 지금이 인생의 영적 파종기임을 잊지 마시시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을 받을 만한 때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도서3:1-8(일부)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인생에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있습니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는 <주자십회>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후회하는 열가지라는 뜻입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少不勤學 老後悔(소불근학 노후회)
젊을 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
春不耕種 秋後悔(춘불경종 추후회)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
인생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씨앗은 반드시 봄에 파종해야 합니다.
씨앗을 가을에 파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파종할 시기를 놓친 농부는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정직한 땅에 무엇을 심을까요?
우리는 이 영적 인생의 봄에 무엇을 심을까요?
학업을 심고, 생명을 심고, 복음을 심읍시다.
그리고 인생의 풍요로운 가을을 꿈꿉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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