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서론
오늘은 사사시대 삼손에 관한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사사(士師, judge)시대란?
-시기적; 여호수아 사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등장 하기 전 사무엘 때까지 약 340년 간을 사사시대라고하며, 이 기간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총칭합니다.
-영적;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 삿21:25)’
사사기에는 <범죄-하나님의 징계-백성의 부르짖음(회개)-사사를 통한 구원-일정한 기간이 평안-또 다시 범죄>라는 패턴이 있습니다.
사사기13장은 그 6번째 패턴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삼손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다른 사사는 성인으로 등장하지만
삼손은 출생 배경부터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1:5)”
성경은 삼손에 대한 기록으로 사사기21장 중 무려 4장이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는 삼손에 대하여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
그러면 삼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나실인으로 부르셨습니다.
나실인은 독주나 포도주를 마시면 안 되었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면 안 되었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는 사람입니다. 특별한 선택만큼이나 하나님의 각별한 은사와 초자연적인 역사가 동반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나실인 ‘답지 않게’ 살았습니다.
삼손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이방사람 블레셋 여자와 결혼했습니다(삿14-15:8).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삿14:3)”
삼손은 나실인으로서의 출발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고,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성도가 목사를 걱정’하고,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대통령이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해 나라가 위기에 빠졌고
부모가 부모 답지 못해 가정의 위기가 왔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조국의 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저는 오늘의 교회를 감히 말한다면 마치 <버려진 소금>과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세상에 이렇게 짖밟힌 적은 없습니다.
왜 우리 조국의 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우리가 ‘성도답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삼손만이 나실인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삼손, 사무엘과 세례 요한처럼 나실인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약의 나실인의 삶은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해진 그리스도의 자녀들 모두가 나실인입니다.
삼손이 그랬던 것처럼 신약의 나실인도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의무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며
사명은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날 성도들은 ‘거룩함’ 보다 ‘쾌락’을 떠 추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캠퍼스 사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실시한 <한국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1000명 중 크리스천은 172명(17.2%)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더 줄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들 기독대학생 중 선교단체에 참여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13명으로 0.8%에 불과했습니다. 기독 대학생 100명 가운데 불과 1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지금 체감하는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렇습니다.
어쩌면 오늘 날 젊은이들이 겪어야 할 현실이 너무도 험난하기 때문에
선교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족이 어려울 때 교회가 부흥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거룩한 삶을 열심히 추구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우리도 나실인입니다.
나실인의 삶은 거룩한 삶입니다.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가 진정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념해야 합니다.
신분과 직분에 걸 맞는 삶을 사는 것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러면 삼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둘째, 성령의 터치하심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삿13-16장이 삼손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 가운데 아주 중요한 지점에서 반복되는 구절 몇 군데를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13:25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성령께서 삼손과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사사기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을 위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갔을 때 젊은 사자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사사기 14: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이 딤나의 젊은이들과 내기한 것을 갚기 위해 아스글론에서 악을 행한 사건입니다.
◦사사기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성경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주 성령께서 터치하심을 입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성령의 터치하심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삼손은 ‘드릴라의 늪’에 빠져 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사사기 16:20-21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이것이 나실인 삼손의 최후입니다.
성령의 터치하심에 둔감했던 한 성도의 비참한 최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성령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성도가 어찌 삼손 한 사람 뿐이겠습니까?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자식이 떠나고, 배우자가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떠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날 수많은 사람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살아갑니다.
쪽방촌에 그런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 받는 것도 이렇게 두렵고 견딜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제2이 삼손, 제2의 사울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바로 ‘성령의 터치하심에 민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에 민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삼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셋째, ‘이제라도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삼손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둔감했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하나님이 부르심을 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삼손뿐이겠습니까?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성령의 역사하심에 둔감했던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제라도’의 은혜입니다.
니느웨 백성에게는 멸망이 선포되었습니다
니느웨 왕과 백성이 요나로부터 그 소식을 듣습니다.
◦욘3: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은혜’를 삼손에게 베푸셨습니다.
◦삿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30.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은 죽었지만 나름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삼손의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언약은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추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삿16:25절과 27절을 보겠습니다.
25.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27.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하나님이 사람이 만인 앞에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삼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게서 욕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하나님이 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 세상으로부터의 받는 조롱과 비난이 이런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날 우리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 아닐런지요.
따라서 오늘 날 교회에 대한 책임은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이 밤에 우리가 하나님께 더 무릎 꿇어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신앙’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2:12)”
이제라도 깨어 일어나십시오.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일어나
우리가 살아가야 할 광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주의 제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2개 월 간의 방학은 학생들에게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에게는 기회이고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위기가 되는 것이지요.
어제가 2월 1일 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중 한 자매가 이런 답문을 보내왔습니다.
<넴~~~!!잘 지내고 있어요~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도 잘 지내시죠??ㅎㅎ
안 그래도 기도회 꼭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사님 근데 저 요즘에 매일 성경 읽으려고 생각중이어서
오늘 아침에도 어디 읽으면 좋을지 생각해봤는데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 먼저 읽어보고 싶은데 추천해 주실만한 장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지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아직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잘애야i 얼마나 잘 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걷게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가운데 걷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 불순종하는지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네 태도를 알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 태도가 기특하지 않습니까?
삼손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거룩한 삶을 살고자하는 거룩한 몸부림이 없었습니다.
신앙은 거룩한 ‘몸부림’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좋은 말씀 > 리민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에서 믿음의 거목이 되라! (느1:1-5) (0) | 2017.02.20 |
---|---|
“예수님을 생각하면 목이 막혀 옵니다.” (0) | 2017.02.16 |
‘나는 어떤 목사인가?’ (0) | 2017.01.30 |
성경적 보수주의자가 되라! (롬13:1-7) (0) | 2017.01.22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눅15:11-32절) (0) | 2017.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