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방학중 기도회에 나온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오늘 아침 대학 때 함께했던 동아리 벧엘 단톡방에 올라온 글을 읽겠습니다.
“회장님! 벧엘의 이야기 전하느라 수고하심 늘 감사하네요.
올해도 벧엘의 은혜스런 이야기로 풍성한 마당이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지인이 보내온 것과 같은 내용은 지양했으면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극단적 보수주의 편견으로 볼수 있으니
참고만 하라는 뜻일지라도 갈등과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올해는 좋은 소식 기대어 이른 시일에 다시 얼굴 볼 기회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정치적인 것을 올리지 않으려 했는데 실수로 전달했네요. 양해바랍니다”
한 형제가 정치적인 내용의 글을 옮긴 것이 문제였습니다.
요즘 내게도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분이 자꾸 보수단체에서 퍼온 글을 내게 보내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내용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북한의 지령문(指令文)소름이 끼치는 충격정보
-국민들아 깨우처라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탄핵반대 집회!
양극단에 서 있는 국민들! 그리고 심지어 성도들!
이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통치자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물론 기독교인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탄핵 반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 해야 합당한 것입니다.
나는 탄핵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정치 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나는 오늘 날 이 무너진 성전(한국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감히 말한다면 한 마디로 <버려진 소금>과 같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이렇게 짖밟힌 적은 없습니다.
여기에는 로마서13장에 대한 잘 못된 해석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본론
그러면 로마서13장 1-7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우선 이 말씀의 배경은 유대민족이 로마치하에 있던 때임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왕 느브갓네살 왕은 내 종이다(렘27:6)’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내 목자다(사44:28)’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문제는 바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해석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복종’과 ‘맹종’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잘 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히틀러도 김정은도 하나님께서 세웠다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전3:11)”
여기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러면 로마서13장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둘째, 모든 권세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것입니다(4절).
“그(권력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세상의 권력자는 광의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종’이고 ‘사역자’이기 때문에
권력자는 권력을 백성을 위해 공의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느브갓네살과 고레스는 하나님의 어떤 일을 했는가?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왕은 유다민족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불태운 왕입니다.
하지만 그가 흩어 버린 유대민족은 세계 곳곳에서 회당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계로 확산시켰습니다.
그 수백년 후 세계 곳곳에 세워진 그 회당은 복음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페르시아왕 고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스룹바벨과 수만명을 예루살렘에 보내 성전을 재건하게 한 왕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면 어떻게 한 제국의 왕이 아주 작은 포로민족의 성전건축에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재건의 약속을 성취할 때 하나님의 종 고레스가 그 일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느브갓네살왕도 고레스도 알렉산더(성경번역)도 심지어 바로왕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룬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않는 권력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그러면 로마서13장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셋째, 성도는 모든 권세에 대하여 양심에 따라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5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앞에서 모든 권력자는 하나님이 세원 것이며
권력자는 공의를 행해야 한다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과
모든 권력이 공의롭다는 말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해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투표로 심판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지상 지고지순한 제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주의 제도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주신 하나의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그 성경적 근거는 ‘제비 뽑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선거’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가요?
그 여지가 바로 본문5절입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문제는 ‘양심’입니다.
여기서 소위 좌우가 갈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양심에 따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골방기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양심에 따라 광화문에 나가 시위를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폭력도 불가피하다고 합니다.(본 훼퍼 목사).
하지만 성경은 목적이 정당해도 폭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성도는 민주주의의 함정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주권하에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주권하에서의 민주주의요.
하나님의 위임하에서의 통치권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성도는 성경적 보수주의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요즘 소위 대통령의 국정농단 관련 청문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핵심 인물들 중에는 크리스찬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 청문회에서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화여대입니다.
이화여대는 1887년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튼이
고종으로부터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교명을 하사받음으로써
최초의 근대 여자교육기관으로 정식 승인받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이 땅에 헌신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미션스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화여대가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되어
최근 이화여대 전직 수뇌부가 전원 구속되거나 예정되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션스쿨을 나락으로 추락시킨 장본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나는 솔직히 그 분들이 정말 크리스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화여대의 추락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또 하나는 <일부 기독교 단체>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기독교 보수단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소위 <보수 기독교>단체들에 대하여 감히 <사이비 기독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적 보수주의’는 ‘원리 주의자’가 아닙니다.
성경적 보수주의는 ‘수구주의자’도 아닙니다.
성경적 보수주의는 정확히 말하면 말 그대로 <성경적 가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개혁적’ 또는 ‘진보적’이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성경적으로만 하면 됩니다.
성경대로 하면 더 이상 개혁할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진보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적으로만 하면 됩니다.
동성애와 낙태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는 아닙니다.
또한 맹목적으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보수는 아닙니다.
그냥 권력의 시녀일 뿐입니다.
사이비 보수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안보>입니다.
어찌 보수만 안보를 중시합니까?
그분들은 자신들만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지난 해 히트했던 드라마 ‘태양이 후예’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송중기 송혜교 커플의 첫 데이트 중 송혜교가 물었습니다.
송혜교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군인이 됐어요? 제복 판타지 얘긴 말구요."
송중기 "누군가는 군인이 되야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건 왜 묻습니까?”
송혜교 “얼마나 투철한 애국심이면 목숨을 거나해서요”
송중기 “애국심이 뭔데요?”
송혜교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과 민족에 충성을 다하고...”
송중기 “그런 건 왜 군인만 해야 합니까?”
나는 이 대사를 들으며 순간 전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왜 애국은 군인만해야 하고 군인만 한다고 생각합니까?
왜 애국은 보수만하고 진보는 안 한다고 생각합니까?
또 하나 <탄핵 반대>가 기독교의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좌빨들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
몇 해전 종북 단체인 한 정당이 해산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문제가 많았던 정당입니다.
하지만 소위 보수를 표방하는 현 정권이 나라를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도 부끄럽게 현 정권에 투표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최고 보수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 가치인 복음과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의 ‘나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파수하는 우리가 진정한 성경적 보수주의자들인 것입니다.
◆결론
첫째,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하나님 주권주의에 앞 설 수 없습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하되 그리스도의 양심에 따라 해야 합니다.
비굴해서도 안 되며 폭력적이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적 보수주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경적 보수주의는 복음과 진리를 파수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나라와 민족과 통치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라.
골방기도도 하고 현장기도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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