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사랑하는 동역자 이상은 김성찬 박소연 이정은 김현아 자매!
주님의 이름으로 졸업을 축하하며, 수원지구 맏가지 됨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매우 아쉽고도 뜻 깊은 날입니다.
지난 수년간 주와 복음을 위해 함께 동역하던 동역자들이
이제 세상으로 파송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단체에 들어오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사역자들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세상이라는 광야로 나갑니다.
하지만 지금 광야는 무척 춥습니다.
최근 기사 하나를 읽겠습니다.
<지난해 공공기관 10곳 중 6곳은 청년을 인턴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전무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0대 기업의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48.6%가 올해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 인원을 작년보다 줄일 예정이다.
오늘도 희망과 희망고문,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 중인 취업준비생 4명을 만났다.
대한민국 취준생 청년들에게 희망고문이 아닌 진짜 희망이 있는지 물었다.
4명의 하소연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난 취업준비생이다. 이번 학기가 대학생 마지막 학기다.
오늘은 학교에서 대기업 채용 설명회가 한창이다.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언변 좋은 인사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이미 대기업 사원이 된 듯 자신감이 넘쳤다.>
<동아리 선배라는 그는 내게 명함을 주며 말했다.
"이건 너한테만 특별히 주는거야. 지원하면 내가 얘기 잘 해볼게. "
"직책이 사원인데 결정권한이 있나?"
의문은 남지만 그래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나만 받았으니까.>
<유명 컴퓨터 업체 인사담당 선배가 학교에 왔다.
특별히 할 말이 있을거란 기대에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대로 해라, 더 노력해라."
선배가 준 취업 꿀팁(tip)이었다.
모 공기업 인턴에 합격했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다 불합격이란다. 다 부질없다"
채용 연계형 인턴이라며 기뻐하던 게 불과 6개월 전.
작년 정규직 전환이 많아 올해 티오(TO)가 없단다.>
<"다녀왔습니다!"
"에휴" 아빠가 날 보더니 한숨을 크게 내쉰다.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또 시작이다.
"아니 쟤는 언제까지 취업 준비만 하는거야!"
"애는 오죽하겠어요! 조용히해요 애 다 듣겠어요~!"
"들으라고 해! 저 놈 정신 좀 차려야지!">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오늘 날 우리의 아들 딸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은 온실의 화초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차가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광야는 ‘사단의 공격’이 있는 영적 전투의 장소이자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이 양면성이 모두 공존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지 않고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살았기에 재앙을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믿음의 거목’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광야의 거목’이 되어야 합니다.
◆본론
그러면 광야에서 믿음의 거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1-5)
다음은 최근 군에 간 세진형제가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입대한지 7일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D맨들이 그립습니다.
입소대에서 수요일에 교회를 갔을 때 벽에 걸린 말씀을 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이 첫 구절을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말씀에 이정도로 의지한 적 처음입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을 생각하면 목이 막여 옵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 전에는 그렇게 감정이 넘친 적이 없었는데
군대를 보낸 이유를 알았습니다.>
남자들은 군에 가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추운지 잘 압니다.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장교후보생 시절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불렀던 찬송이 있습니다.
바로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지금도 저는 가끔 혼자 이 노래를 부릅니다.
순례자가 선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오늘 본문의 느혜미야는 페르시아라는 광야에서 살았던 믿음의 거목입니다.
느혜미야는 이국땅에서도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페르시아)에 있는데
2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느혜미야는 비록 포로민으로서 페르시야의 중요한 관직을 얻었지만
그의 중요한 관심사는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는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그냥 읽어 나갈 때에는 당연히 다 좋은 말이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150년 전에 포로로 끌려간 3-4세 포로민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성전을 향한 이러한 관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은 또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총리 되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하나님의 도성’이란 구약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상징하지만
신약에서는 하늘의 보좌(우주 가운데 충만하신 하나님/내주 하시는 하나님)에 계신 주님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중심’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코람에우)’의 삶입니다.
즉 여러분이 어딜 가든지 어디 있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거룩한 삶’이며, ‘충성된 삶’이며,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광야에서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바로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광야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광야에서 믿음의 거목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 ‘세상에서도 인정 받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느2:1-8)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훼파 소식을 듣고 깊은 시름에 잠김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느2:1-2)‘
느혜미야는 묵도하고 즉시 왕에게 요청합니다.
‘왕에게 아뢰되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느2:5)’
놀라운 믿음의 용기입니다.
왕은 느혜미야의 요청에 즉석에서 두 달간의 휴가를 허락을 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닙니다.
평소 느혜미야의 삶을 통한 선한 영향력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많습니다.
성경은 에스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페르시아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스7:6)'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부흥을 위해 힘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 그가 페르시아 왕에게 구하는 것은 모두 허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니엘도 대적들의 모함에 결려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은 바로 페르시아 고레스왕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다니엘에 대한 특별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자굴에서 건져내심을 입었을 때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단6:26-27)‘
여기서 주목할 것은 느혜미야도 에스라도 다니엘도 모두 이스라엘 포로민으로서
모두 이민족의 핵심에서 인정받았던 유력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들이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과 인격이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1968년경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전방(춘천) 시찰을 마치고 육군의 군단장 이상 주요 지휘관들을 위한 만찬 파티를 춘천에서 베풀었습니다. 이 만찬장에는 2군단 예하 사단 중 3개 사단장이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 27사단장 나희필장군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대통령이 부대 지휘관들에게 돌아가면서 격려 주를 따라 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희필장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때 나장군이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각하!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체면 손상이라고 여길 순간 국방장관의 기지로 일단 넘어갔지만 만찬장의 분위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만찬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박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만찬장을 나갔습니다. 한편 대부분의 장성들은 나장군이 군복을 벗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군사정권시절 최고권력자의 체면을 상하게 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장군은 그 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고 오히려 별을 하나 더 달고 소장으로 진급, 육군본부 작전 참모부장으로 영전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제대 예편을 앞두고 어느 날 밤 심야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보부의 차장보 자리의 인선문제로 며칠 밤을 지새던 김재규 부장은 문득 나희필 장군이 생각나 새벽 두 시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당시 이 차장보 자리는 중앙 정보부의 막대한 예산 집행에 관여하는 요직이기 때문에 청렴 결백성이 요구되는 인물을 추천해야만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김재규 부장의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도 "일국의 국가 원수가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믿음의 장군 나희필이야 말로 그 어떤 압력도 부정도 유혹도 능히 거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잘 추천했다"고 합니다.
이분은 후에 새문안교회 장로님으로 섬기신 분입니다.
이분은 참된 광야의 거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현실과 타협합니다.
크리스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앞에 나열한 분들은 모두 세상에 속했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었고 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세상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빛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세상 광야에서도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맺는 말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은 온실의 화초로 자랐왔습니다.
캠퍼스는 온실과 다름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광야는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 때 주님의 손을 꼭 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주님은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길이며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향도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러분을 이 차가운 광야로 내보내는 제 마음은 많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 냉엄한 현실 앞에서 어쩌면 많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포기가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인내와 연단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할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정말 두렵고 무서운 것은 ‘현실과의 타협’입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사십시오.
광야에서도 인정받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광야에서도 믿음의 거목으로 사십시오.
세상의 광야로 출발하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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