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99)

새벽지기1 2016. 8. 6. 07:29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특별히 돌아보신다(10:2, 9:146편). 하나님은 또한 자신을 가난한 자와 동일시하신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언 14장 31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언 19장 17절).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하게 지내셨으며(마태복음 8장 20절), 제자들을 가난한 상태로 파송하였다(누가복음 9장 3절과 10장 4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들어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정치, 경제 및 군사적으로 미약한 이스라엘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민족들을 위한 계시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로마 황제나 산헤드린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두개인이 아니고 작은 나사렛 동네의 한 가난한 목수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대부분 가난한 보통 사람이었다. 초대교회 다수의 구성원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부유하거나 권세 있는 사람들을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고 명령하셨다(출애굽기 22장 21절부터 24절, 신명기 15장 13절부터 15절). 그들이 가난한 자를 부당하게 대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직접적으로 억압한 것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필요한 것을 그들과 나누지 않은 책임을 물으셨다. 소돔 성이 멸망한 것은 그 성 사람들이 성적 타락과 아울러 가난한 자와 필요한 것은 나누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에스겔 16장 49절과 50절). 
선지자들은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라 가르쳤다(이사야 사1장 16절과 17절, 아모스 5장).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자에게 가난한 자를 도울 것을 명령하셨다(마태복음 25장 35절부터 45절).


삭개오 이야기는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구원받는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다(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3절).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한 종교적 행위를 하면서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선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웃 사랑의 의미를 궁지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새롭게 밝혀주셨다. 따라서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다. 그것은 인간의 권리를 해쳤기 때문이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를 무시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개인의 재산은 남의 필요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망만을 채우기 위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나친 부를 소유하는 것 자체도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아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재산이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지 않으면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과 재산은 겸해서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굴은 가난한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9절). 가난하면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려고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할 유혹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하는 형태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가령, 불법적인 일, 남을 속이는 거래, 거짓 광고, 남에게 주어야 할 돈을 주지 않는 것 등 많다. 이 모든 형태는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