큄멜의 결론은 이 두 본문이 사람이 갖는 특별한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에게 영생을 잃을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것이 그 근본 의도라는 것이다. 큄멜은 예수님이 사람을 오직 하나님과 갖는 관계에서 보신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그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존재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고서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동물도 하나님이 지으셨으나, 마태복음 6장 26절부터 30절까지와 10장 31절에 따르면, 사람은 동물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지으신 것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갖는 특별히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특별한 과업을 맡기셨는데 그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W. G. Kummel, Man in the New Testament, London: Epworth Press, 1963).
하지만 이 의무는 위 성경 구절의 문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구절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특별히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실상 사람이 하나님에게 전적인 의무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라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인 권리를 갖기 때문에 귀한 존재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의무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이 귀한 존재라는 개념과 충돌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해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합리론자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큄멜은 예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귀한 존재라는 것을 내포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는 성경 구절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이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구절은 모두 믿는 사람, 곧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나 그 밖의 신약성경의 구절은 분명히 보편적 아들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귀한 존재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그가 이룩한 어떤 것이나 사람이 하나님께 반응한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든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주신 것을 귀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죄가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처음에 지으신 것을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는가? 이 문제는 큄멜에게 주님의 마음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지위를 갖는가에 달려 있다. 그 지위는 전적인 의존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주에게 전적으로 헌신해야 할 존재다.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가치도 가질 수 없고 더구나 하나님을 거역할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다.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존엄성을 갖는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할 어떠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하는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비록 그 아버지가 무지나 어리석음 혹은 악한 뜻으로 자식에게 해를 끼치는 가능성이 남아 있을지라도 아들의 권리에 대한 물음은 거의 아무런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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