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3)

8장 재림 : 서론

새벽지기1 2016. 7. 3. 06:51


8장  재림 : 서론

 

1. 재림에 대해 고찰해야 하는 이유

 

1) 성경이 수없이 재림을 언급하고 있다

재림은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다.

- 성경의 30분의 1은 재림에 대한 언급이다.

- 초림에 대한 언급 1번에 재림에 대한 언급은 8번의 비율이다.

 

2)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가르치셨다

24장과 25장은 이 교리만을 다룬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는 오직 이 주제를 위해서 쓰여졌다?

주님 자신이 재림을 강조하셨으며, 자주 언급하셨다.

24, 25, 13, 21.

 

알베르트 슈바이쳐-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서 복음서는 재림에 대한 예수님의 묵시적 가르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19세기 말 20세기초에 유행한 신학적 분위기는 모더니즘 혹은 자유주의로서 ‘예수’를 ‘역사적 예수’와 ‘바울의 그리스도’로 대비시켜 말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묵시적 요소들을 빼버렸다. 예수는 도덕과 윤리, 행동과 행위만 가르쳤다고 했다.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고 있다고 하면서 모든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제거해 버렸다. 이에 대해 슈바이처는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고, 이후 교회의 역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소위 ‘역사적 예수’를 뒤엎어 버렸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복음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3) 사도들도 재림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첫 장부터 이 주제를 만나게 된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였다(7).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서신서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베드로는 벧후 3장에서 바울에 대해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주님의 날이 임함)에 관하여 말하였으되”라고 한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바울서신, 야고보서도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교리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서 순교자들과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것은 복된 소망이자 교회가 고대하는 것인 동시에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베드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7).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11-12)

 

2. 재림의 교리가 소홀히 여겨지는 이유

1) 영적 무기력

우리는 삶과 환경에 희생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낙심시키고 우리 삶을 다른 일들로 가득 채워서, 이 복된 소망을 잊어버리게 하려 애쓰는 원수와 대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교리는 핍박과 환난의 때에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의 헛됨을 알게 될 때만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2)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

거짓 관점과 개념들 때문이다.

1, 재림- 죽음 가운데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것(14:1-3)

2, 재림- 오순절날 교회 위에 그리고 교회 안에 임했을 때 일어난 일.(14:17-18)

    주님이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오신 것으로 해석.

3,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 사건으로만 해석하는 것. 주님의 오심을 유대 민족의 국가가 멸망하는 것에 국한시킨다.  

 

3) 그리스도인들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터무니 없는 가르침에 대한 소심함과 신중함.

수세기 동안 재림의 날자를 독단적으로 예언하곤 했다. 이런 가르침들의 별난 생각과 과장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재림의 교리를 전혀 고찰하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이론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정통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베드로의 말처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일이다(벧후 3:16).

 

3. 재림의 문제에 접근하는 바른 자세 - 균형

 

신중한 것이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신중함이 그 문제를 완전히 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해 균형 있게 읽는 것이 지혜롭다. 먼저 성경을 읽으라.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읽으라. 양쪽 입장 혹은 모든 입장의 글을 읽으라. 한쪽 입장의 글만을 읽는 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이다.

 

똑같이 경건하고 똑같이 학구적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면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고 최선을 다해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경고- 이 교리에 관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 배타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거룩함에 관련된 운동을 조직하거나 재림과 관련된 운동을 조직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든 교리는 결합되어야 한다. 한 가지만 전파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다면 당신은 결국 균형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교회는 언제나 모든 교리를 전파해야 하며 특정한 교리들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4. 재림에 대한 서론적 접근

 

1) 재림과 연관해 사용한 용어들

묵시(apocalypse)- 계시, 수건을 벗기는 것, 벗겨진 수건의 개념

현현(epiphany)- 나타남 혹은 드러남

묵시는 우리 주님이 서 계시고 그 앞에 장막이 쳐 있다가 그 장막이 거두어져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된다는 개념이다. 현현은 주님의 오심, 주님의 나타나심을 강조한다.

파루시아(parousia)- 임재. 주님이 그의 백성에게 다시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

하나님의 날- 벧후 3:12,    주의 날- 살전 5:2, 벧후 3:10

주 예수의 날 혹은 그리스도의 날- 고전 3:13

이 용어들은 상호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2) 재림이 일어나는 방식

 

(1) 인격적인 오심이다.

 

(2) 영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오신다.

 영적인 오심- 오순절날 성령을 통해 오심,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시에 심판 가운데

   “주님의 오심”, 지금도 여전히 영적으로 오심, 부흥의 때에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에 오심,  

 육체적 오심- 재림 교리. “이 후에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26:64).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0-11).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8)

   초림과 재림은 둘 다 육체적인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1:7)

 

(3) 재림은 가시적인 사건이다.

비밀스럽고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서의 재림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4) 재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번개의 번쩍임에 비유(24:27). 도적이 밤에 오는 것에 비교(24:43).

 

(5)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이다.

영광 중에, 하늘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고전 15:52)

왕의 왕, 주의 주로 오실 것이다.

 

재림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경건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거룩한 삶을 촉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3) 재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


그 연구가 여러분을 겸손하게 만든다면 당신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쭐하게 되고 지성과 열정이 자극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연구 방식이다.

그 연구가 당신으로 하여금 무릎 꿇고 예배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방식의 연구이다.

그 일을 해냈다는 자기 만족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연구방식이다.

이것은 지성만이 아니라 전인격을 위한 주제이다. 그것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진리에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