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3)

제 6 장 죽음과 불멸성

새벽지기1 2016. 6. 28. 07:06


제 6 장 죽음과 불명성


1. 종말론은 무엇이며 왜 연구해야 하는가


1) 종말론이 다루는 내용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운명, 개인적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동시에 세상 전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 주제들은 모두 대단히 실제적인 것들이며, 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익숙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2) 오늘날 종말론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가 초에는 종말론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이생에서의 삶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 즉 이 세상의 사회적 상황을 개선시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물론 과학 지식의 진보와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잘못된 추론이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은 없으며, 이생에서의 삶과 세상만 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낙관론은 1차와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끝날 것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내세에는 희망이 있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이 불안정의 시대에 그들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대해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아야 한다.


2. 죽음- 개인적 관점의 종말론


1)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

죽음은 존재의 단절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성경은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일 뿐 절대로 존재의 단절이 아니다. 내가 죽을 때 내 영혼은 육체를 떠날 것이며 계속 존재한다.

아주 중요한 두 본문이 이 문제 전체를 매듭지어 준다.

1. 눅 12:4-5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마 10:27,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

2. 눅 16장에 나오는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같은 내용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둘 다 육체를 남겨 두고 떠났지만 그들의 영혼은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성경의 근본적 정의이다.


2) 우리는 왜 죽는가

인기 있는 철학적 견해는 죽음은 삶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서 삺의 과정의 일부라는 것이다. 생명이 만들어질 때 그 안에 죽음의 배아, 죽음의 씨앗도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에 따르면 죽음은 삶의 일부로서 삶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이다. 죽음은 죄로 인해 들어왔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죽음은 죄로 인해 왔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는 죽음이 없었고, 그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성경의 원리이며, 절대 다수의 사람의 가르침을 지배하는 인기 있는 현대 철학과 완전히 배치된다.


3) 왜 그리스도인도 죽어야 하는가

내가 예수를 믿었다면 내 죄는 사해졌고, 나는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했는데 왜 그리스도인이 죽어야 하는 걸까? 많은 사람은 같은 논리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논증이 사이비종교들 뿐 아니라 오늘날 인기 있는 신유 운동의 기초를 이룬다. 그들은 마 8:17(사 53:4의 인용)를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질병을 담당하셨다고 한다. 속죄가 그런 식으로 죽음을 해결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육체적 죽음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 신자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죽어야 한다. 우리는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 이는 몸이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도 질병과 죽음과 죄가 남아 있도록 기꺼이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셨더라면 우리를 즉시 완전하게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망과 모든 질병을 즉시 없애 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에 대해 성경은 대단히 명확하게 가르친다. 자세한 설명 없이 속죄가 죄의 모든 결과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은 질병 및 죽음과 관련하여 속죄를 오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즉시 그렇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그렇게 될 것이다.


질병과 죽음은 성화 과정의 일부다

그리스도인들이 성화 과정의 일부로서 여전히 고난과 질병과 죽음을 겪도록 남겨졌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 히12:3-13- 의 일부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시편 기자가 119편에서 말한 것처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71,67절)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질병은 하나님의 징계 과정의 일부이다. 모든 병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또한 죽음도 질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에게 축복이 되어 왔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에 도취되어 하나님 및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고 타락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이 아프거나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죽음을 상기함으로써 그들은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타락을 치유해 주셨다.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죽음에 종속되어 있지만, 죽음에 대한 견해는 불신자들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한다. 우리는 죽음에 당당히 맞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6,57).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그가 율법을 만족시키셨다는 것 때문에 사망의 쏘는 것이 제거되었음을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죽음이 유익이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안다. 바울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은 일이나”(빌1:21-23)라고 말한다. 한편 계 14:13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한다.


4) 불멸성

성경은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명백하게 진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견 없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성경이 인간의 영혼을 불멸의 존재로 간주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영혼의 불멸을 반대하는 논증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를 근거로 오직 하나님만이 불멸하신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멸이라는 선물을 사람들에게 주기로 결정하신 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무한하신 지혜로 불멸성이라는 선물을 인간의 영혼에 주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셨다.


구약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불멸하다는 암시와 가르침을 찾을 수 없다는 논증

전도서 저자는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9:4)라고 했다. 마치 죽음은 마지막이고 우리도 끝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논증에 대한 대답은 성경에는 일종의 점진적 계시가 나타나 있으며, 구약보다는 신약에 더 분명한 개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교리가 발전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죽은 자들이 가는 스올이라는 장소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구약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살아간다고 가르친다.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누구나 스올-헬라어로는 하데스-로 내려간다. 성경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에 의해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다”(딤후1:10)라고 말한다.

구약의 몇몇 구절은 구체적으로 영혼의 불멸을 가르친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을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0-11)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시73:24).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구약 성경이 죽은 자의 영혼과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는 사실이다. 이 금지령은 소위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언급했다. 구약 성경에는 죽은 자의 영혼과 접촉하는 것과 강신술을 금지하는 많은 가르침이 있다. 이러한 금지 자체가 영혼의 불멸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논증이다. 사람들의 영혼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 존속하지 않는다면 그런 금지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이미 언급했다. 변화산상에서 일어난 일에도 증거가 나타나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존재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마22:32)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하나님은 지금 그들의 하나님이시라고 논증하신 것이다. 눅 16장의 부자와 나사로도 죽었지만 의식이 있고, 보고 있고, 근심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계속 존재한다는 대단히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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