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아모스 1장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4. 29. 07:21


1장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1. 아모스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황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 이래로 최대의 경제적, 군사적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그 때는 1절이 말하는대로, 유다의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여로 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였다. 여로보암 2세는 주전 793년에 통치를 시작했고 웃시야는 주전 739년에 죽었으므로 아모스 선지자의 시기는 대략 주전 8세기로 볼 수 있다. 본문은 아모스의 예언 시기를 ‘지진 전 이년’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스가랴 선지자가 이 지진을 언급하고 있는 것 외에(슥14:5) 그 구체적인 연대는 알 수 없다. 아모스는 본래 유다의 드고아 출신의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지자로 부르셔서 이스라엘로 보내 예언하게 하셨다(7:14~15). 목자가 사회적으로 천한 직업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과 유다에 비해서 더 화려한 부와 번영의 황금기를 지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게 하셨다는 것은 대조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부와 번영을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겼지만 선지자 아모스는 그것이 축복이
아니며 도리어 저주라는 사실과 그들이 임박한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쌓아 올리고
구가하던 부와 번영은 온갖 불의와 탐욕의 열매였고 소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부와 번영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회는
그야말로 착취와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 정의가 사라진 사회였다. 탐욕은 결코 채워질 수 없었기에 그들은 계속해
서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으로 찾아 드는 불안감을 잠 재우기 위해서 그들은 다양한 형식적
인 종교적 예배를 만들어야만 했다. 형식적 예배 행위는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불편함의 진정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라는 바, 여호와의 날은 그들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일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을 향한 심판
의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선지자는 이것을 말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
님께서 바라시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참된 증거이기 때문이
다.

3.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부르짖고 소리를 내기시작하셨다(2).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주민들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지 못하게 하려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듦으로써 예루살렘의 존재를 무시했지만 하나님께서
는 그들이 무시한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향해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다. 갈멜이 언급되는 것 또한 엘리야 시대의 하
나님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4. 1장 3절부터 2장 5절까지는 유다를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장 6절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긴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나
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기 전,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들을 때 마음이 즐거웠을 것이고 아모스 선지자를 좋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의 칼이 자신들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아모스 선지자를 핍박하
기 시작했다.

5. 선지자가 심판을 선포하는 나라들의 순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밖에서부터 안으로 좁혀져들어오는 소용돌이 원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북동쪽에 다메섹(3~5),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먼 남서쪽에 블레셋(6~8), 다시 북
쪽으로 올라가서 두로(9~10), 안으로 좁혀져들어가면서 남쪽의 에돔(11~12), 시계방향으로 돌아 이스라엘의 서쪽에
암몬(13~15), 암몬의 바로 남쪽에 모압(2:1~3) 그 다음 이스라엘의 바로 아래 남쪽 유다(2:4~6)에 대한 심판 메시지가 있고 나서 이스라엘로 이어진다. 선지자는 그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할 때 그들의 ‘서너 가지 죄’를 지적한다. (1:3,6,9,11,13; 2:1,4). 보통 히브리말로 셋이 복수를 의미하는데 서너 가지라고 하면 많다는 의미를 담게 된다. 즉 불의와 불법의 잔이 채워져서 심판만을 기다리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6.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로, 이스라엘의 지역인 길르앗을 압박하고 그 사람들을 잔인하게 다룬 죄를 지적받는다(3). 당시
아람 사람들이 철타작기 같은 기구로 그들이 점령한 지역의 사람들의 사지를 절단한 악행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
다. 블레셋은 다섯 성읍으로 구성된 나라였는데 여기에는 네 개의 성읍 이름이 등장한다. 블레셋은 유다가 멸망할 때(주전
586년) 바벨론의 편에서 섰던 에돔을 도와서 유다의 멸망을 재촉한 죄를 지적받는 것으로 보인다(6). 그러므로 이것은 이
미 일어난 범죄라기 보다 미래의 시점에 일어날 범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두로는 형제와의 계약을 깨뜨린 죄를
지적받는데 이는 솔로몬과 두로 왕 히람 사이의 계약을 지적하거나(왕상 5:12) 아합과 이세벨의 아버지 두로왕 엣바알과
의 계약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왕상 16:31), 블레셋처럼 유다의 멸망 때 에돔을 도왔던 역사적 행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
다(9). 에돔의 죄는 풀지 않는 복수심, 분을 끝없이 품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적
대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11). 암몬의 죄는 그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이었다(13). 암몬은 자신들이 정복한 영토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으로 유명했다.

7.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나라와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에게 주신 양심과 자연법을 따라서 심판하시며, 율법을 주셨던 자기 백성은 율법으로 심판하실 것
이다(롬 2:14~15).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지혜로운 삶이다.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
는 자는 복된 사람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그날을 바라보고 살 것을 명한다. 하나님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 당신은 당신이 행한 모든 일을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설명드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시다(요일 2:1). 그러므로 신자는 두려움으로 그날을 인식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경외함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 1:25).” 이 얼마나 복된 은혜인가!

8.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벌거벗은 자와 같이 서야 할 인생들이오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함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다릴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사는 참된 경건을 저희에게 더욱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