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스크랩] 옥한흠목사..에세이.

새벽지기1 2016. 4. 22. 22:28


  어렸을 때, 추운 겨울밤이면 어머니는 이불을 여러 겹 덮어 주곤 하셨다. 그 이불 밑에서 나는 항상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아침이 되면 그 따스함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나는 또다시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은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여러 겹 덮어 주신 이불 안의 따뜻한 잠자리를 그리며 추운 낮 동안 큰 위안을 삼았다. 지금도 외롭거나 의심과 불안의 추운 바람이 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갈 때면 어릴 적 사랑으로 덮어 주시던 어머니의 이불이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이불이 걷힌 세상은 우리에게 정치 문제, 경제 문제, 가정 문제, 종교 문제, 건강 문제 등 온갖 고통을 준다. 세상이 주는 모든 고통의 절반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이다. 가정의 상처, 마음의 상처, 육신의 질병까지 그 원인의 반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화라는 사실을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문제는 특정 종교에서 부르짖는 교리가 아니며,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이며, 행복의 문제요, 가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랑은 우리가 세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방패다.

 

  이렇게 중요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도 강압적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으려면 자신이 먼저 진실한 사랑에 대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 다음에 상대로 하여금 사랑하도록 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표준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준이 너무 높아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누구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진실한 사랑을 해 보았으면…’ 하는 작은 불꽃 같은 소망도 높은 사랑의 표준 앞에서 힘없이 꺼져 버린다. 진실한 사랑을 시작도 못해 보고 절망해 버리는 수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감정을 앞세우는 버릇이 있다. 사실 연애할 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남녀 사이에 에로스는 존재할 수가 없다. 감정을 앞세우기 때문에 그 사랑을 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이 불같이 타오르다가도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질투하고 성내게 되는 것이다. 


  에로스의 사랑과는 달리 아가페의 사랑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나 가슴이 차가운 사람 모두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의지적이며,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저울질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싫든 좋든, 감정이 있든 없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도 오래 참아 주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멀리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견디는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데에는 요란한 감정이 필요 없다.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이 사랑은 생명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완전히 자기를 죽이고 사랑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만이 감히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사랑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을 아는 만큼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자녀에게 불행이란 먼 나라 이야기다.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부모에게 기쁨을 줄 때, 부모의 사랑은 자녀에게 집중되고, 그렇게 성장한 자녀는 부모의 사랑 안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자연히 형제자매와 친구, 이웃에게 전해진다. 그 사랑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 한줄기 빛을 발하게 된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나누는 사람끼리는 비밀이 없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주 친한 사이에는 손을 잡고 말없이 오솔길을 걸어가기만 해도 서로 마음이 다 통한다. 이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이다.


  또한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절벽 아래로 던지면서도 그 마음에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기쁨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 기쁨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는 이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직 이 기쁨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는 어딘가 사랑의 감격이 막혀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볼 때, 사랑하기를 거부하거나 싫어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 사랑함으로써 잃는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사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평안과 안식,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와 같은 이상적인 사랑을 완벽히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한 명이라도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삶 속에서 참 행복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서로 사랑하면 우리 안에 있는 근심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공포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도 서로 사랑한다면 모두 해결되기 때문이다.


  어려울수록 더 사랑하자. 고통이 있을수록 더 사랑하자. 생활이 궁핍해질수록 더 생명을 바쳐 사랑하자. 그 사랑은 공포를 덜어 버리고, 아픔을 덮어 주며, 마음의 근심을 덜어 줄 것이다. 굳어 있는 마음, 열리지 않는 마음,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글.옥한흠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