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강단의 영성 - 로이드존스 / 송삼용 목사

새벽지기1 2016. 2. 26. 06:34

 

로이드존스(1899-1981)는 본래 의학을 전공했다. 25세 때에는 영국 왕립의학회 회원이 될 만큼 탁월했다. 그런데다가 당대의 유명한 왕실 주치의였던 호더 경에 의해서 조수로 발탁될 만큼 장래가 촉망된 의사였다. 하지만 강권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1년 6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27세 때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설교의 능력으로 놀라운 부흥을 일으킨 위대한 설교자였다.

그의 첫 목회지였던 웨일즈 아베라본 지역의 베들레헴 전진교회에서의 부흥은 역사적인 1904년 웨일즈 부흥 때보다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 소위, 무기력한 교회들이 깨어나고 활기를 잃어버린 교인들의 영혼이 소생되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에 심취되었던 사람이 변화되고, 거리에서 악명 높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회심했다. 매일 술집에 다니던 주정뱅이들도 교회를 향해 줄을 이었다. 심지어 로이드존스의 아내조차도 능력있는 메시지에 큰 은혜를 받고 변화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1년 반만에 이룬 아베라본의 부흥은 10배에 가까운 성장을 이루었다. (부임 당시 93명 등록 교인 중 50여 명 출석하다가 11년 반 만에 평균 출석 교인 850명이 됨). 당시 정황에 비춰보면 그런 수적 증가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부흥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그의 설교에 있었다. 여기에 그의 설교가 얼마나 능력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조지 제프리스 목사가 아베라본을 방문했다.

그는 영국 전역에서 가장 큰 군중을 불러모은 오순절파의 설교자였다. 로이드존스의 설교를 듣고 난 후에 제프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설교를 여기서 선포해온 것은 죄악이었다." 그 메시지에 너무나 큰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군중이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실로 그는 능력 있는메시지로 놀라운 부흥을 일으킨 설교의 거장이었다. 그는 아베라본 사역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사역했다. 1938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의 채플의 담임목사이며, 강해설교의 왕자라 일컬었던 캠벨 모건으로부터 목사로 초청받은 것이다. 그후 5년 뒤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래 1968년 은퇴할 때까지 30년 동안 탁월한 말씀의 능력으로 교회와 영국 전역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존 스토트는 그의 영향력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한다.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의 죽음과 더불어 약 30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강력했던,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었던 그의 복음주의 목소리는 이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는 주로 성경 강해자로서 세인의 뇌리에 기억될 것이다. 버킹엄게이트(Buckingham Gate),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시무하던 50년대와 60년대의 전성기에 그는 2천명의 회중을 1시간, 혹은 1시간 15분 동안 마법에 매혹된 듯 꼼짝 못하게 만들곤 했다. ......신학적으로 혼란스런 시대에 그는 역사적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굳게 고수했다. 그는 논쟁적 연설가였으나 언제나 원리원칙과 인신공격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았으며, 가슴이 따뜻한 사랑과 평화의 사람이었다. 박사님은 영적인 아버지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신학적 영적으로 가히 심각한 공백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