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돈목사

[스크랩] 말씀과 성령/ 박영돈 목사

새벽지기1 2016. 1. 21. 05:28

말씀과 성령

 

▲ 박영돈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한국교회에 강해설교의 붐이 일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운동은 설교가 우선적으로 성경본문의 충실한 해석에 근거해야한다는 중대한 사실에 주목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충실한 강해설교에 대한 관심만큼 성령에 사로잡힌 설교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 미흡하다. 설교에 있어 말씀과 성령은 서로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칼빈은 말씀과 성령은 항상 같이 가야하며 성령이 없이는 말씀도 아무 효력이 없다고 하였다.


성경본문을 잘 해석했다고 해서 그 설교에 자동적으로 성령이 함께 한다는 보장은 없다. 성경에 충실한 설교가 항상 성령의 역사하심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탁월한 강해설교에 성령의 역사가 부재할 수도 있고, 성경해석이 좀 미흡한 설교를 통해서 오히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할 수 있다. 


주 기철 목사를 비롯해서 과거 한국교회에서 활동했던 기라성 같은 목사들의 설교를 지금의 강해설교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모두 낙제감일 것이다. 그들의 설교는 거의 예외 없이 성경해석도 부실하고 내용도 빈약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설교를 통해 성령이 강하게 역사했던 역사적인 증언들이 남아있다. 


지금도 어떤 목사의 설교는 성경해석도 시원찮고 기발한 아이디어나 지혜의 번득임도 없고 논리도 엉성함에도 신비하게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적인 감화력이 있다.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선동하지도 않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반면에 성경강해가 탁월하며,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와 빈틈없는 논리로 구성된 설교가 별 감화력을 미치지 못하고 열매가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설교에 있어 성령의 역사하심을 추동하는 것은 설교의 문자적 내용만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요소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 신학적인 혜택을 요즘같이 누리지 못하던 시절에 사역했던 목사들은 신학적으로 충실한 내용의 설교를 작성할 만한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영성과 기도의 사람들이었기에, 불완전하게나마 성령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에 반해 지금은 설교자들이 많은 학식을 가지고 뛰어난 강해설교를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그들의 설교를 통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심대한 제약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설교자 자신이 성령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거룩한 도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을 잘 해석할 능력이 부재한 것이나 영성이 결핍된 것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충실한 강해설교와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설교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며 결코 양자택일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설교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요소, 즉 말씀과 성령이 결합되어야 엄청난 영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성경본문에 충실한 강해설교에 관심을 집중했다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에 이끌리는 설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능력에 이끌리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설교사역을 위해 성령을 도구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힌 도구가 되는 것이다. 설교사역에서 설교자가 성령을 도구화하느냐 아니면 성령의 도구가 되느냐의 양극 사이에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존재한다. 설교의 은사가 탁월할수록 성령을 도구화하려는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

 

설교자로서 성공하려는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설교자가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할수록 성령으로 충만하기가 어려워진다. 그것은 성령 충만을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삼으려는 강한 욕망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갈증이 성령의 생수 자체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설교자로서의 성공에 대한 목마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교자의 깊은 마음의 동기가 주를 위해 일한다는 거룩한 대의로 교묘히 은폐되기에 그 욕망의 정체를 판독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설교자가 성령의 충만함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 동시에 성령으로 충만하기가 가장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성령을 자기 목적을 위해 도구화하려는 설교자의 은밀한 종교적 야욕이 십자가에서 처리될 때까지는 성령으로 충만하기 힘들다. 

 

박영돈 목사@기독교보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새언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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