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돈목사

[스크랩] `웃기는 설교’가 유행하는 시대

새벽지기1 2015. 12. 31. 09:15

'웃기는 설교’가 유행하는 시대



요사이 '신바람 나는 설교', '웃기는 설교'가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설교가 한 가지 기여한 것이 있다면 거룩에 대한 기존의 경직된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근엄하고 엄숙하고 심각해야 하며, 웃는 것은 세속적이며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인식이 변하고 있다. 웃음과 거룩의 함수관계에 대한 이해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웃음과 거룩은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았던 이전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웃음과 거룩은 서로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으로까지 급반전 되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설교가 은혜로운 설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바람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도 하다. 


거룩한 것은 딱딱하며 고루하고 진부한 것이라는 왜곡된 견해는 당연히 불식되어야한다. 거룩하면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해 질수록 행복해진다(holier happier)는 명언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재미있고 멋있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웃기는 설교’가 웃음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공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지라도, 이런 설교가 교인들에게 끼치는 심각한 해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하는 어떤 침례교회목사는 특별한 유머 감각과 뛰어난 재담과 익살의 은사를 가지고 청중을 매료시키며 집회시간 내내 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그렇게 자신의 특별한 재간을 통하여 재미없는 세상 삶에 지치고 피곤한 이들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 주는 것도 나름대로 유익과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복음전파방식이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과 위험은 인간의 재담과 말의 유희와 현란함이 성령의 감동하시는 역사를 교묘히 대체하고 약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령이 주시는 참된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인간의 익살과 잔꾀로 깊은 영혼을 감동시켜서가 아니라 육신의 표피적 감성을 자극하여 창출해낸 가벼운 웃음거리를 선사하며, 그것을 마치 성령의 은혜인양 교인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설교를 통해서도 간혹 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 때문이다. 


설교자의 가장 추한 죄악은 성령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해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게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교묘한 육적인 편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 자신이 유명해지고 영광과 찬사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위한다는 명분을 철저히 내세우면서도 자기 영광을 은밀히 추구하는 것이 설교자가 가장 빠지기 쉽고 극복하기 힘든 죄악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강단에 나타나고 있는 ‘웃기는 설교’의 붐은 교회 역사 속에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변칙적인 설교의 행태이다. 이렇게 강단의 메시지가 말씀의 깊이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가벼운 담소거리로 전락해 버린 적이 없었다. 


설교자의 황제라고 불리는 스펄젼은 설교자가 말재간과 유창함을 의존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저주스러운 일이며, 영원한 형벌을 받을만한 중대한 범죄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이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물론 설교에서 적절한 예화와 유머는 양념과 같이 설교의 맛을 돋우는데 유용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웃기기 위해 고안해낸 유머를 남발하는 것은 청중의 관심을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분산시켜 재미에 쏠리게 한다. 그리하여 교인들의 영혼이 말씀의 깊은 세계에 뿌리내려 거기서 영적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성숙하지 못하고 말씀의 표피에만 머무는 영적 미성숙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복음에는 그 특성상 가벼운 웃음과 유머를 곁들여 전달할 수 없는 진지함과 심각성을 띤 내용과 주제들이 다분하다. 


진리의 말씀은 많은 경우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과 같이 듣는 이의 양심과 폐부를 찔러 영혼의 깊은 절규와 신음을 자아내며, 웃기기보다 애통하게 함으로써 마음에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이러한 설교만이 교인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며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한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그런 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강단에 참으로 감동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이 회복되어야 한다. 은혜도 없고 지루하기만 하여 교인들의 인내 연습을 시키는 설교보다는 차라리 재미라도 있는 설교가 낫다고 보는 교인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들에게 참된 설교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머와 예화를 남발하여가며 구태여 웃기려 하지 않더라도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 나라의 보화와 권세를 온전히 밝혀주는 말씀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전하면, 회중에 큰 감동과 기쁨이 임한다.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가벼운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며 통곡이다. 우리들의 영적 타락으로 인해 죄와 세상에 포로된 뼈아픈 사실에 대해 애통할 때 해방의 기쁨과 회복의 은혜가 임한다. 


참된 기쁨의 세계로 들아 가는 관문은 회개의 눈물이다. ‘너희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라’는 야고보의 말씀은 특별히 이 시대에 절실한 메시지이다. 공허한 웃음을 회개의 울음으로 바꿀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웃게 되며 말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영원히 웃게 될 것이다.       


-고려신학대학원 박영돈 교수-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새언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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