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저자 박영돈 교수는 이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IVP)을 성령과 성경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경을 통해서만 성령의 근본적인 사역이 무엇이며, 그 사역의 특성과 패턴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영적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를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 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논리는 명료하다. 곧 성령님은 자유하시지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진리의 테두리를 벗어나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저자는 성령께서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분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과의 관계에서 보이시는 겸손하심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냉철한 성경적 검증과 분별을 거부할 때, 교회 안에는 봇물 터지듯 온갖 종류의 사이비 가르침과 미혹하는 영의 역사가 밀려들게 될 것”이라는 예리한 지적을 던지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늘날 소위 ‘성령운동’을 한다는 이들의 논리 즉 성경으로 입증될 수 없는 영적인 차원의 경험과 역사들을 섣불리 비판하게 되면 이는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된다는 주장에 철퇴를 가한다.
오히려 우리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선입견 혹은 편견으로 인해 영적인 현상들을 철저히 성경적인 검증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즉 말씀의 굴레에서 벗어난 성령 운동은 이단들이 득실거리는 온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진리를 혼잡하게 하는 미혹의 영이 활개 치는 영적인 세계에서 진리의 잣대를 가지고 다양한 영적인 현상을 진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무리 굉장한 표적과 기적이 일어났을지라도 그것을 무턱대고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을 가장하는 미혹의 영의 자유로운 역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의심스러운 것은 그대로 믿기보다는 의구심을 가지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며 성경 말씀을 신앙과 체험의 척도로 삼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이다.
저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한 성령의 감동이나 메시지가 마음에 떠오를 때가 있으나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확신과 마음의 감동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섣불리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은 성령뿐 아니라 육신의 욕망과 마귀적인 세력에 의해 자극된 온갖 잡다한 생각과 메시지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곳이기에 어떤 생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에 계시된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아직도 허락되지 않은 천상의 세계를 엿보려는 영적 관음증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이는 너무 성급하게 천국을 청구하려는 영적 조급함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래를 미리 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삶은 불가능해진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삶 속에서 누리는 무한한 선택의 지유를 누리지 못하며 그 선택의 책임을 다하는 인간으로 성숙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는 만약 우리가 원하는 대로 미래를 훤히 내다본다면 우리는 이미 정해져 어찌할 수 없는 냉혹한 운명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말한다 “성경에서 예언하는 이는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어 메시지를 주실 때만 예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자칭 예언자들은 자신이 원하면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예언을 해준다. 이는 성령을 자기들이 필요할 때 호출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하수인처럼 취급하는 행위다.”
진정한 영적 부흥에 대하여 저자는 한 마디로 말씀의 부흥이 진정한 부흥이라고 말한다. 예언자의 말이 판을 치고 성경 말씀이 뒷전으로 밀려난 최근의 성령 운동은 부흥이 아니라 심각한 영적인 탈선이며 쇠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성경을 벗어나 성경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천국에 대한 간증, 신비 체험, 하나님께 받았다는 직통계시, 주님의 이름을 빙자한 예언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저자는 신학과 삶의 깊은 통찰력을 담아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이렇게 강조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죄의 삶에 신물이 나야, 죄가 주는 일락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이키고 난 후에야, 죄의 쓴 열매로 인해 삶이 더 이상 비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곤고해져야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 원한다. 죄의 삶에서 아직 숨 쉴 여유가 있는 한 우리는 성화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교회에 변화되지 않는 교인들이 많은 것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증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성령이 우리가 변화되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령의 지속적인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끈질긴 설득에 의해 우리의 완고한 마음이 서서히 굴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비성경적인 성령운동은 이러한 느리고 힘든 길을 회피하고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한 방편이 된다고 지적한다.
1 장의 결론으로, 복음 사역자들과 성도들은 비록 느릴지라도 사역의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아도 정도를 따라 주의 일을 해야 하며, 바울처럼 “모든 겸손과 눈물과 오래참음으로” 일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행20:19, 31)
박영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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