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왜곡되고 뒤틀리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원인론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대립적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천국과 지옥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천국(하나님나라)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동그라미라고 생각하면 천국도 동그라미가 되게끔 되어 있고, 천국을 세모라고 생각하면 구원도 세모가 되게끔 되어 있을 정도로 천국과 구원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구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가 크게 잘못됐습니다.
사실 천국과 지옥은 지금 이 세상이 아닌 어떤 특별한 장소나 공간이 아닙니다. 죽으면 가게 되는 곳이 아닙니다. 몸은 못 들어가고 영혼만 들어가는 영혼의 집합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막힘없이 폭발하는 세계입니다. 지옥은 그저 천국이 아닌 세계, 즉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천국과 지옥을 지금 이 세상과는 다른 어떤 장소, 내지는 공간이라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 내지는 공간이라고 잘못 생각해왔고, 죽어야 갈 수 있는 내세라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니 구원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왜곡되고 뒤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 실상을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마지막에 인자가 영광의 모습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모든 민족을 심판하시는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말씀했습니다(마25:31-4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마5:2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이처럼 예수님은 영생과 영벌이 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상세하고 깊이 있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하나님나라, 하나님 아버지의 기업, 새 하늘과 새 땅, 밤이 없고 슬픔과 눈물과 죽음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정도였고, 지옥에 대해서는 지옥 불,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말하는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상세하고 깊이 있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정보를 갖고 천국과 지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더욱이 천국과 지옥은 아직 우리 손 안에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온전히 경험한 사람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습니다. 스위스의 과학자인 스베덴보리(1688~1772)는 살아생전에 수천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것을 신뢰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보고 왔다고 하는 곳이 진짜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0년에 4살짜리 소년이 천국에 갔다 온 이야기가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The Boy Who Came Back From Heave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큰 화제가 됐던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지난 15일(현지시각)에 그 책의 공동 저자가 책의 내용이 가짜임을 밝혔다면서 그 책의 인쇄 및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진실을 밝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스베덴보리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왔다는 천국과 지옥은 사실상 천국과 지옥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확실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예외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옳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15:1-5).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저주를 이긴 승리의 확증이었고 구원의 첫 열매였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구원의 방법이었다면 부활은 구원의 확증이고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으면 사도들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그 복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다 망한 것이고,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12-19). 진실로 그렇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복음이 모든 것이고, 구원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부활이 빠진 복음, 부활이 빠진 구원을 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을 때를 봅시다. 나사로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후에야 당도하신 예수님께서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 마르다는 지금 당장 죽은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마르다만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을 제외한 대다수 유대인들의 믿음이었고, 초기 기독교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 중에 사람이 죽은 후에 곧바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은 자는 없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 같이 몸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몸이 영원히 소멸하거나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더 오랜 과거로 돌아가서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봅시다. 하나님이 물로 온 세상을 멸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방주로 인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방주 구원 사건은 종말론적 구원 사건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방주에 들어간 것은 노아 가족 뿐 아니었습니다. 갖가지 동물들도 쌍쌍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것처럼 노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를 다스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9:1-2). 그리고 노아와 노아의 후손과 노아와 함께 한 모든 새와 가축과 짐승에게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모든 생명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않게 하겠다고 무지개를 증표 삼아 영원한 언약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세상을 붙잡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부패한 이 세상이 하루 속히 멸망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기를 기도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풍성한 지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으며,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말했습니다(엡1:22-23).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했습니다(골1:19-20).
이처럼 바울은 사람의 영혼만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풍성함이고, 구원의 독특함이고, 구원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런 구원의 풍성함과 독특함과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는 세계가 곧 천국입니다. 즉 땅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결국 천국에는 온 세상과 만물이 다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 있는 전쟁, 강간, 욕심, 불의, 폭력, 자만, 분리, 착취, 수치, 거짓, 경쟁, 자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온 세상과 만물은 정결하고 거룩하게 회복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부활의 몸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천국이고 진짜 천국입니다. 달리 말하면 구원은 ‘부활생명’입니다. 모든 만물이 본래의 상태로 완전히 변화되고 회복된 것이 부활이고, 부활생명이 맘껏 뛰어노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나 여타 사람들이 보았다는 천국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거기에는 온 세상도 없고, 만물도 없고, 부활의 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보았다는 천국은 성경이 말하는 천국이 전혀 아닌 겁니다. 저들이 본 것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거하는 특별한 곳(내세)일 뿐이지 천국이 아닌 겁니다.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닌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저들이 보고 온 내세를 천국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보고 온 자들도 자기들이 본 것이 진짜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들도 저들이 보고 온 곳이 진짜 천국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들이 보고 온 곳에는 부활의 몸도 없고 만물도 없는, 단지 몸의 부활을 기다리는 중간 기착지에 불과한데 최종 목적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의 내세를 최종 목적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 믿다가 죽으면 곧바로 천국의 삶이 시작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5세기부터 지금까지 1,500년 동안을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입으로는 열심히 부활을 말하고, 주일예배 때마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매년 성대하게 부활절을 지키고 축하하면서도 실제로는 부활이 없는 내세를 천국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해괴망측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1,500년 동안이나 계속돼왔습니다.
그렇다면 물읍시다.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됐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바를 너무 쉽게 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고, 우리의 부활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고 말합니다(요5:28-29). 그렇다면 모든 잠자는 자들이 부활하게 되는 날까지는 천국의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예수 믿다가 죽는다고 해서 곧바로 천국의 삶이 시작되는 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명백한 진실, 즉 부활의 세계만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기 때문에 천국이 지금 저 하늘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죽으면 곧바로 그곳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죽은 자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들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내세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을 기다려야 하듯이,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천국도 그렇습니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여기서 천국을 향유하고 있고, 저 또한 온전하지는 않지만 천국의 삶을 맛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운 사역으로 천국이 제 안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국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자들이나 죽은 자들이나 똑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자들도 천국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도 천국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들이 머무는 특별한 곳(내세)에서 다시금 거룩한 몸을 입게 될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물이 구속을 받고 변화되고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것들과 땅의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평화의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코 잊지도 마시고 혼동하지도 마십시오. 천국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천국은 ‘죽음 이후의 세계, 이후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성경적 진실입니다. 우리가 이 명확한 진실을 놓쳤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지금처럼 왜곡되고 뒤틀리게 된 것이고, 지나온 1,500년 동안 세계 교회가 왜곡되고 뒤틀린 구원론을 믿고 따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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