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출 17:8-16)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6. 5. 04:56

 

해설:

르비딤에 머물러 있는 동안 네겝의 유목민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8절). 신명기 25장 17-18절에 의하면,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쳐 있을 때 진의 후방을 공격했다. 무장도 되어 있지 않았고, 해를 끼칠 아무런 의도도 없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침략한 것이다. 이 공격에 이스라엘은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지휘관의 임무를 맡기고, 아론과 훌을 데리고 호렙 산 정상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한다(9-10절). 인간적으로는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압도했고, 손을 내리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 밀렸다(11절). 그러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좌우에 서서 그의 팔을 부축하여 계속 기도하게 도왔고, 그로 인해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쫓아 버릴 수 있었다(12-13절). 

 

아말렉이 퇴각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승리를 책에 기록하여 후대에게 전하라고 명하시고, 아말렉 사람들을 멸절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여호수아에게 알리라고 하신다(14절).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닛시'(주님은 나의 깃발)라고 이름 지었다(15-16절). 이스라엘이 야만무도한 아말렉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깃발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묵상:

구약 성서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의문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편드시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며, 잔인한 살육 행위를 그분이 승인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과 정의를 따라 행하신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풀 수 없는 의문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전쟁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미화합니다. 전쟁의 와중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그 말이 궤변처럼 보입니다.

 

구약의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가?” 혹은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요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바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먼저 “사람들이 왜 이러는가?” 혹은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 하나님의 처사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싸움도, 국가적인 전쟁도, 인간의 헛된 욕망과 야만성에 의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성에 물든 인간은 자신의 몫을 불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제거하려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도움을 구합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믿는 이들이 그 상황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도록 기다리시지만, 때로 전격적으로 개입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들과의 전쟁에 개입하신 것은 그들의 잔인성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심신이 지쳐 있고 전쟁에 대해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노략질을 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악행이 너무도 심하여 하나님은 본보기로 아말렉 민족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약자들을 유린하려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여기셨습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아말렉 사람들과 같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연약한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야만의 행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들의 죄를 똑똑히 보시고 주님의 정의로 다스려 주십시오. 저희 안에 아말렉 족속의 누룩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웃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으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