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내 산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다.(출 19장)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6. 7. 05:44

해설:

이스라엘은 르비딤에서 보름 정도를 지내고 시내 광야로 이동한다(1-2절). 장막을 치고 자리를 잡게 한 다음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당신이 하신 일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가운데서 당신의 "보물"(5절)이 될 것이며 당신이 "선택한 백성"이 되고 당신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6절)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목적을 처음으로 천명하신 것이다. 모세는 산을 내려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백성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한다(7-8절).

 

모세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서자,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 주실 것이라고 예고하신다(9절).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만남의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을 준비시키라 하신다. 사흘 후에 당신을 드러내실 터인데, 백성은 이틀 동안 그 사건을 위해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10-11절). 또한 하나님은 산 아래에 경계선을 정하여 때가 이르기 전에 산에 오르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단단히 이르신다. 때가 오기 전에 경계선을 넘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12-13절).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는 셋째 날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성결하게 한다(14-15절). 셋째 날이 되자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산양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16절) 퍼진다. 그 모습에 진에 있던 모든 백성은 두려워 떤다. 모세는 백성을 진밖으로 불러내어 산 아래로 모은다. 하나님의 위엄을 제대로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17절). 그 때 시내산에서는 마치 불가마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진동한다(18절).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니, 하나님은 "음성으로"(19절) 그에게 대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부르신다(20절).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백성이 경계선을 넘어 와 죽는 일이 없게 하라고 경고하신다(21-22절). 모세는 충분히 일러 두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23절). 그러자 하나님은 내려가서 아론을 데리고 올라오라고 하신다. 단, 아론 외에 다른 제사장은 경계선을 넘어 올 수 없다고 하신다(24절).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행한다(25절).

 

묵상: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어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육적 존재이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성을 부여하셨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육안으로 볼 수 없고 그분의 음성은 귀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존재를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영이신 하나님과 육적 존재인 우리 사이의 거리입니다. 

 

그 거리를 우리 편에서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 거리를 뛰어 넘으실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하고자 하시면, 우리의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는 않으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태양을 응시하면 시력에 해를 입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그 영광에 압도되어 숨이 멎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이런 일은 일상사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이와 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은 일상 가운데 침투한 특별한 사건입니다. 시내 산에서의 현현처럼 부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 20:29)고 하셨습니다.

 

기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는 바울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희도 이 믿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자주 눈을 감고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 눈으로 현실 세상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