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얼마 후, 진 위에 머물렀던 구름이 떠올랐고,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을 거두어 신 광야를 떠난다. 민수기 33장 11-14절에 따르면, 신 광야를 떠난 후에 돕가와 알루스에 각각 진을 쳤었고, 알루스를 떠난 후에는 르비딤에 진을 친다(1절). 16장에 기록된 사건과 17장에 기록된 사건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인 간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을 쳤던 장소들의 위치를 정확히 확정할 수 없다. 지형도 변하고 지명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름이 머무르는 곳에는 오아시스가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르비딤에는 오아시스가 없었다. 그러자 백성은 모세에게, 마실 물을 구해 내라고 거칠게 요구한다. 모세는 그들의 행위를 “주님을 시험하는”(2절)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곳에 진을 치게 한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로 인한 고통은 심해졌고, 불평과 원망은 커져만 갔다(3절).
견디다 못한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4절)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7절) 하고 말할 정도로 믿음을 잃어 버렸다. 주님은 모세에게, 장로들을 데리고 호렙 산으로 가서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5절)로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이르신다(6절). 모세가 그대로 하니, 물이 터져 나왔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후대에 사람들은 그곳을 “므리바”(“다툼”이라는 의미)라고도 불렀고 “맛사”(“시험함”이라는의미)라고도 불렀다(7절).
묵상:
르비딤에 구름이 멈추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 오아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주저했을 것입니다. 신 광야를 떠날 때 가지고 온 물로는 며칠도 버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장로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곳에 진을 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으니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져온 물이 떨어진 후에도 구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고, 가축들은 지쳐갔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믿음은 점점 증발되어 갑니다. 여차하면 모세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7절)라고 말할 정도로 심한 불신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되었고, 홍해를 마른 땅 걷듯 걸어 건넜으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기적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물이 없다는 한 가지 이유로 인해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기적에 눈 어두워지고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이적은 이토록 쉽게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처음 눈 뜨면 세상 전부가 하나님 나라로 보이지만, 그 눈은 금새 어두워지고 침침해집니다.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숨 쉬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이적인데, 어려움이 닥칠 때면 우리는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혹은 "주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매일 은총과 기적과 신비에 싸여 살면서 그것에 눈 머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오늘 이야기를 통해 깨닫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믿고 의지할 믿음이 저희에게 있습니까?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저희에게 그 믿음을 주십시오. 깜깜한 밤중에도 태양이 비치고 있음을 알고 믿듯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조차 주님을 의지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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