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모세의 족보를 소개한다. 족보는 이스라엘(즉 야곱)의 첫 아들 르우벤(14절)과 둘째 아들 시므온(15절)의 자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레위는 레아에게서 얻은 셋째 아들이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16절), 둘째 아들 고핫에게서 모세가 나왔다(17-19절).
아므람은 요게벳과 결혼하는데, 나이 어린 고모였다(20절). 율법은 근친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데, 이 결혼은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이루어졌다. 종족 보존이 중요한 가치였던 고대에는 근친 간의 결혼이 흔했다. 아므람에게는 딸 미리암이 있었지만, 당시의 관습대로 족보에는 두 아들 이름만 기록되었다.
족보는 고핫의 다른 아들들의 자손들을 소개한 다음(21-22절), 이스할의 아들 고라의 자손을 따로 소개한다(23절). 이렇게 선택적으로 족보를 소개한 이유는 그 가문이 후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고라는 모세에게 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의 자손들은 죽음을 면했다(민 26:11). 고라의 후손들은 후대에 성전 문지기(대상 9:19)로, 요리사로(대상 9:31), 노래하는 자(대상 15:19)로 섬겼고, 시편에 여러 편의 “고라 자손의 노래”(42편, 44-49편, 84-85편, 87-88편)를 남겼다.
아론의 큰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딸”(25절)과 결혼한다. “부디엘”은 이집트 이름이다. 그 아들 “비느하스” 역시 이집트 이름이다. 이것은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들과 통혼한 예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비느하스는 모압 평야에서 모압 여인과 동침하는 이스라엘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여서 유명해졌다(민 25:10-13). 비느하스는 후에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상징적 인물로 기억되었다.
묵상:
족보는 “축약된 역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족보에 나오는 대다수의 이름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름 하나 하나가 역사를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을 읽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는 그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때로 놀라고, 때로 감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산 사람의 아들이 왜 그렇게 악하게 살았을까?” 혹은 “그토록 악하게 산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토록 거룩한 아들이 나왔을까?” 혹은 “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은 신앙인이라고 해서 그 신앙이 자손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각자의 몫이요 각자의 결단입니다. ”부모의 믿음이 좋다면 자녀의 믿음도 좋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은, 뒤집으면, 불신앙의 부모에게서는 불신앙의 자녀만 나와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물질적인 유산이 대물림 되는 것도 억울하고 부당한데, 영적인 유산까지 그대로 대물림 된다면 그것처럼 부당하고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믿음을 물려줄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물건처럼 자손에게 쥐어 줄 수는 없어도, 속수무책인 것만은 아닙니다. 자녀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며 믿음으로 사는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력하고 느려 보여도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내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간다면, 그 믿음이 자손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기도:
주님, 자녀들에 대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저희의 믿음을 바로잡아 주셔서 자녀들이 저희를 통해 주님을 찾게 도와 주십시오. 믿음의 전통이 저희에게서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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