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출 5:1-9)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5. 9. 05:22

해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 바로를 찾아갈 준비를 한다. 바로의 허락이 떨어지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 다음, 두 사람은 바로를 찾아간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바로에게 가라고 하셨는데(3:18), 어쩐 일인지 모세는 아론만 데리고 바로의 궁으로 간다

그들이 바로를 알현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절대 왕국의 최고 권력자가 노예 백성의 대표의 면담을 허락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1절)의 명령이라면서, 광야로 나가 절기를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광야에서 절기를 지키게 허락해 달라는 것은 전략적 요청이다. 처음부터 이집트를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 바로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보다 작은 요청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말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2절). “그 주가 누구인데” 혹은 “나는 주를 알지도 못하니”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요구를 허락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 것”(3절)이라는 말로 바로를 설득한다. 다신교 문화를 가진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을 진노하게 하면 그 신으로부터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에게는 소중한 노동력을 잃는 결과에 이른다. 

 

바로는 그것을, 노동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여기고 거절한다(4절). 5절에서 바로가 한 말은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새번역은 “그들이 이집트 땅의 백성보다도 더 불어났다”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은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이라고 번역했다. 개역개정의 번역을 따르면 의미가 더 잘 통한다. 바로는, 이집트 백성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에 히브리 사람들의 노동력이 더 필요해졌다면서, 사흘 동안 일을 쉬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묵상:

이제 바로가 무대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는 “악의 전형”입니다. 인간이 죄성에 함몰되면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모델입니다. 따라서 독자는 바로의 말과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동일한 악이 자신 안에 있지 않은지 혹은 우리 사회에 재현되고 있지 않은지를 물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대하는 바로의 태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악의 모습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가 히브리 사람들을 필요로 한 유일한 이유는 그들의 값싼 노동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인간다운 삶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히브리 사람들은 가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신과 이집트 백성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에게 부여된 절대적 가치에 눈 멉니다. 그 사람의 이용 가치를 따지고, 이용 가치가 있는 한 곁에 두지만, 이용 가치가 없다 싶으면 가차없이 폐기합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 악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권력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중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만큼 인간을 높이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그 사람을 천부적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아무런 유익도, 쓸모도 없다 해도, 인간인 이상 그 사람은 존중 받아야 합니다.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형상을 부여하시고 창조의 꽃으로 대우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주님의 형상이 성령의 은총 안에서 오롯이 회복되게 해주십시오. 사람을 대할 때 저희가 얻을 유익을 계산하는 죄된 습성을 늘 경계하게 하시고, 누구를 만나든 저희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맞는 것처럼 대하게 도와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