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목적은 악한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며, 동시에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은 그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확실히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번에 완전히 임하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경고성 심판이 이어질 것이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심판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인들이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심판이 임하는데 땅의 4분의 1에 재앙이 임합니다. 그 다음 일곱 나팔의 재앙에서는 나팔이 불려질 때마다 땅의 3분의 1에 재앙이 임합니다. 마지막 일곱 대접의 심판에서는 제한 없이 땅의 모든 영역에 심판이 임합니다. 마지막 심판은 불가피합니다.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질 때 마지막 심판이 일어납니다. 마지막 심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산과 바위들을 향하여 “우리를 향해 무너져 내리라”고 요청한다고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큰 두려움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두려움과 어린 양의 진노 앞에 서는 두려움입니다. 그 진노 앞에 선 이들이 “누가 이 큰 진노를 견뎌낼 수 있겠느냐?”고 외칩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큰 진노에도 견딜 수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이들입니다.
성령의 인치심,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실한 보증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실한 보증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너희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치지 말라”(3절).
네 천사는 땅과 바다를 심판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도장을 가진 천사가 올라와서 그 심판을 멈추게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심판을 지연시키시는 이유는 은혜를 베푸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의해서 심판이 지연된 때는 지금 이 시대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심판이 지연되고,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시기입니다.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어떤 고난과 죽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구원받는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진 최후의 심판 때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죽음에 처하지 않고 구원받는 백성들입니다. 인침 받은 백성들이 더 많아지게 하려고 심판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최후의 심판이 임하기 전,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경고성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이때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인을 치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마에 찍힌 도장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고, 인지할 수 있도록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인치심은 신약에서 성령님의 사역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13~14).
“또한 그분은 우리를 인 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셨습니다”(고후 1:22).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역할,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확증시켜 주시는 게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이마’가 의미하는 것은 확실하게 나타나는 증거이고,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도장을 찍으시는 것입니다. 인치심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고 했는데, 보증은 보증금입니다. 일부로써 전부를 보장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첫째, 하나님의 소유권을 보증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은 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사단의 공격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한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져서 물러서지 않고, 믿음을 지키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네 천사는 땅과 바다를 심판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도장을 가진 천사가 올라와서 그 심판을 멈추게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심판을 지연시키시는 이유는 은혜를 베푸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의해서 심판이 지연된 때는 지금 이 시대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심판이 지연되고,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시기입니다.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어떤 고난과 죽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구원받는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인이 떼어진 최후의 심판 때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죽음에 처하지 않고 구원받는 백성들입니다. 인침 받은 백성들이 더 많아지게 하려고 심판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 최후의 심판이 임하기 전,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경고성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이때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인을 치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마에 찍힌 도장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고, 인지할 수 있도록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인치심은 신약에서 성령님의 사역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 1:13~14).
“또한 그분은 우리를 인 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셨습니다”(고후 1:22).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는 역할,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확증시켜 주시는 게 바로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이마’가 의미하는 것은 확실하게 나타나는 증거이고,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도장을 찍으시는 것입니다. 인치심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고 했는데, 보증은 보증금입니다. 일부로써 전부를 보장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첫째, 하나님의 소유권을 보증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은 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둘째,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사단의 공격에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한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져서 물러서지 않고, 믿음을 지키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완전한 구원 강조하는 ‘14만 4천’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를 ‘14만 4천 명’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14만 4천 명만 구원 받는다는 게 아닙니다. 혈통적인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택함 받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14만 4천의 근거는 구약의 열두 지파 12와 신약의 열두 사도 12를 곱하면 144이고, 거기에 충만한 완전수를 상징하는 1,000을 곱하면 14만 4천입니다. 완전한 숫자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백성들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수에서 한 사람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비하고 계신 처소가 완전히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구원의 작정하심과 실행하심은 그 어떤 영혼도 빼앗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생명도, 천사들이나 악마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능력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서 ‘14만 4천’이라는 수를 강조한 것입니다. 완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지상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도록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군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계수를 합니다. <민수기>는 ‘백성의 숫자를 센다’는 뜻입니다. 지상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군대, 이 악한 세상에 존재하는 사단과 싸우는 군사,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을 받는 군사로서 싸운다는 겁니다. 어린 양 예수님처럼 순교함으로써 그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 8절까지는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9절에서 17절까지는 요한이 본 또 다른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상에서 안식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상의 교회에서 천상의 교회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영원한 경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4만 4천 명을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표현합니다. 14만 4천 명과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앞에서는 완전수로 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안전함을 강조하고,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속한 것입니다.” 그때 모든 전사가 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영원한 경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생명도, 천사들이나 악마들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능력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서 ‘14만 4천’이라는 수를 강조한 것입니다. 완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지상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도록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군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계수를 합니다. <민수기>는 ‘백성의 숫자를 센다’는 뜻입니다. 지상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군대, 이 악한 세상에 존재하는 사단과 싸우는 군사,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을 받는 군사로서 싸운다는 겁니다. 어린 양 예수님처럼 순교함으로써 그들을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 8절까지는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9절에서 17절까지는 요한이 본 또 다른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상에서 안식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상의 교회에서 천상의 교회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영원한 경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4만 4천 명을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표현합니다. 14만 4천 명과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앞에서는 완전수로 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안전함을 강조하고,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속한 것입니다.” 그때 모든 전사가 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영원한 경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경배 드리는 큰 무리
영원한 경배 드리는 큰 무리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경배를 드리는 큰 무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족속, 언어와 백성 가운데 교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격려인지 모릅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한 나라, 한 민족, 한 지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지만, 하나님 나라는 모든 나라에서 온 백성들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언어와 민족과 문화와 장벽이 허물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둘째,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때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물었습니다. ‘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십니다.’ 그때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으로부터 나오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 희게 했습니다’”(13~14절).
이 장면은 <스가랴> 3장을 회상하게 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천사 앞에 서 있는데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그 옆에서 고소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정해진 의복을 입지 않으면 죽임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책망하거나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사단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 합당한 의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고소의 원인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어린 양의 보혈은 우리가 사단으로부터 고소 받는 근거를 제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홍 빛 같은 우리 죄를 흰 눈같이 희게 해 주심으로써 사단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 되신 어린 양의 돌봄을 받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거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굶거나 목마르지 않고 해나 그 어떤 열기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돼 그들을 생명의 샘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15~17절).
흰옷 입은 사람들, 어린 양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깁니다. ‘섬긴다’는 단어는 ‘경배한다’는 단어와 혼용합니다.
“그때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물었습니다. ‘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십니다.’ 그때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으로부터 나오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 희게 했습니다’”(13~14절).
이 장면은 <스가랴> 3장을 회상하게 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천사 앞에 서 있는데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그 옆에서 고소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정해진 의복을 입지 않으면 죽임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책망하거나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사단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 합당한 의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고소의 원인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어린 양의 보혈은 우리가 사단으로부터 고소 받는 근거를 제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홍 빛 같은 우리 죄를 흰 눈같이 희게 해 주심으로써 사단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 되신 어린 양의 돌봄을 받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거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굶거나 목마르지 않고 해나 그 어떤 열기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돼 그들을 생명의 샘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15~17절).
흰옷 입은 사람들, 어린 양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깁니다. ‘섬긴다’는 단어는 ‘경배한다’는 단어와 혼용합니다.
여러분, 영원한 천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며 경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경험한 어떤 해로움도 받지 않습니다. 어린 양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샘물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는 눈물 없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둘러보면 어디나 아파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로 망가진 세상입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오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습니다. 눈물을 씻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천상의 교회가 경험할 수 있는 것,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사라진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상에서 악과 싸우는 군사들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전에 네 가지 말을 타고 나오는 진노와 심판을 우리도 겪습니다. 인내하며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천상에서 안식을 누리며 영원한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늘 소망’이라는 찬양 가사입니다.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 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나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 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상에서 악과 싸우는 군사들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전에 네 가지 말을 타고 나오는 진노와 심판을 우리도 겪습니다. 인내하며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천상에서 안식을 누리며 영원한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늘 소망’이라는 찬양 가사입니다.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 내 주님 계신 눈물 없는 곳 저 하늘에 숨겨둔 내 소망 있네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나 많이 생각나 때론 가슴 터지도록 기다려지는 곳 내 아버지 너른 품 날 맞으시는 저 하늘에 쌓아둔 내 소망 있네 주님 그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 멈추지 않으며 어떤 시련이 와도 나 두렵지 않네 주와 함께 걷는 이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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