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위선적 믿음 (막 7:1-13)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7. 05:25

해설:

예루살렘의 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조사단을 파견하여 정식으로 고발할 죄를 찾기 시작한다(1절).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 모습을 본다(2절). 당시 율법학자들은 레위기의 정결법을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의 세부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장로들의 전통”(3절)이다. “장로들”은 앞서 살았던 율법학자들(랍비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 부정타지 않도록 여러가지 규정을 마련해 놓았다(3-4절). 예수님은 그 전통을 과감하게 무시하셨다. 조사단은 그 점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5절). 

 

그러자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 하시면서(6-7절) “하나님의 계명” “사람의 전통”(8절)을 대비시키신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겠다는 의도로 사람들이 전통을 만들었는데 그 전통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만드는 도구로 오용되고 있다는 뜻이다(9절). 이사야 시대의 위선과 악행을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는 예로써 “고르반” 전통을 언급하신다. 하나님은 부모 공경을 십계명 중 하나로 두실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셨다(10절). 하지만 형편이 너무 가난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 장로들은, "부모님께 드릴 돈이 고르반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면 부모님께 행할 의무가 면제 되도록 규정을 마련해 놓았다(11절). 그러자 넉넉한 사람들이 고르반 전통을 오용하여 부모 공경의 의무를 회피하는 사례들이 생겨났다(12절). 이렇듯, 하나님의 뜻을 지키도록 돕는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장로들의 전통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만드는 방편이 되어 버렸다(13절).

 

묵상:

고르반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자주 하나님의 뜻을 회피할 구실을 찾곤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의 마음은 교활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핑계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굳이 장로들의 전통이 없어도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9-37)가 생각 납니다. 강도 만나 죽어가고 있던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서 도우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울 수 없는 이유를 금새 찾아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죽어 있다면 내가 부정타서 제사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혹은 “저 사람을 도우려 하다가는 제사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수 많은 사람을 위한 제사를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피해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자주 들이대는 핑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뜻은 대개의 경우 너무도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분의 뜻을 모르는 데 있지 않고 그 뜻을 행할 마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분의 뜻을 행하려면 불편과 손해와 박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 옛날 이사야를 통해 주신 말씀이 예수님 시대에도, 오늘 우리에게도 진실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허물을 언제나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 뜻을 찾기에 게을렀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너무나 자주 주저하고 회피했습니다. 저희의 입술에는 믿음이 있는 듯한데, 저희의 마음에는 불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내면과 외면이 온전히 하나이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입술의 말과 손발의 행동이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영을 저희에게 부어 주시어 이 부족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