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사랑이 한 일 (막 7:)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9. 05:57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두로 지역으로 가신다(24절). 그곳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영토(아셀 지파)였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방 영토였다. 예수께서 그곳으로 가신 이유는 잠시 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분에 관한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몰려 왔다.

 

그 사람들 중 딸이 귀신 들려 고통 받는 여인이 있었다(25절). 그녀는 예수님께 딸을 고쳐 달라고 호소한다. 여기서 마가는 그 여인의 출신지를 상세하게 밝힌다(26절).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는 말씀으로 거절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하곤 했다. 이방인들로서는 모욕적인 비유였다. 예수님이 이렇게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비유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모욕적인 언사에 그 여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28절)라고 응답한다. 자신은 어찌 대접 받아도 좋으니 딸만은 고쳐 달라는 뜻이다. 이 대답에 예수님은 감동 받으시고 그 딸을 고쳐 주신다(29-30절). 여기서, 그 여인의 청에 대한 예수님의 냉담하고 경멸적인 언사는 그분의 본뜻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묵상:

예수님은 공 생애 동안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마 10:6)에게만 집중하셨습니다. 복음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들을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에게 찾아오는 이방인들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대하셨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방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믿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면, 복음이 우선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했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다음에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야 했습니다.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는 여인에게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고 답하셨을 때, 예수님은 복음 전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 계셨음에 분명합니다. 씨앗의 비유(4:26-29)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퍼져 가는 것에도 과정과 단계가 있습니다. 구원은 결국 만민에게 이를 것이지만,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찾아와 구원을 호소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답하는 것은 너무 냉담하고 무심해 보입니다. 다른 이야기에서 보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의 “실언”이 아니라 “의도적인 도발”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표현을 빌어 그 여인의 마음을 떠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에 그 여인은 놀라운 대답으로 반응합니다. 이 대답은 재치도, 기지도 아닙니다. 딸을 살리고 싶어하는 그의 뜨거운 사랑이 그렇게 대응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개가 되어도 좋습니다. 내 딸만은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사랑에 예수님은 감탄하시고 그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그 여인이 행한 일은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작은 예시였습니다. 딸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개 취급을  받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정치범의 혐의를 기꺼이 뒤집어 쓰고 당시에 가장 수치스럽고 혐오스럽게 여겨졌던 십자가 처헝을 받으셨습니다. 그 여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딸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기도:    

그 여인의 딸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엄마가 얼마나 큰 희생을 감당했는지 알지 못했겠지요? 엄청난 사랑의 혜택을 입었으면서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자랐겠지요? 그러다가 철이 들어 어머니의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생각해 보니, 저희가 철 없는 그 딸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니 죄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그 영원한 사랑으로 저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얼마나 큰 사랑을 입고 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저희의 마음을 깨우쳐 주셔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