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수님은 이방 지역인 갈릴리 호수 동편에서 “사흘 동안”(2절) 머무르시면서 가르치신다. 처음에는 각자 지니고 있던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에는 음식이 고갈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하루만 굶어도 기진맥진 해졌다. 집으로 가려면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3절). 흩어 보내기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가엽다”(2절)는 말은 1장 41절과 6장 34절에서도 사용된 말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안 제자들은 무리를 해산시키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씀 드린다(4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빵이 몇 개나 남아 있느냐고 물으신다. 빵 일곱 개가 남아 있다(5절)는 답을 들으신 그분은 무리를 땅에 앉게 하시고, 빵을 받아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6절) 하신다. 그런 다음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서 그것을 축복하신 후에 나누어 주게 하신다(7절). 그러자 거기 모였던 사람이 사천 명쯤 되었는데(9절),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8절).
그런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신다(10절). 마태는 이 지방을 마가단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갈릴리 서쪽의 유대인 주거 지역이다.
묵상:
우리는 앞(6:30-44)에서 갈릴리 호수 서편의 어느 빈 들에서 일어난, 이와 동일한 이적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이적을 경험하면서, 조상들이 광야를 유랑하면서 먹었던 만나의 사건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모세를 통해 일어난 일과 비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모세와도 견줄 수 없는 이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무리와 함께 할 때마다 그분은 잔치를 베풀어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식탁 교제를 통해 간간히 보여 주었던 하나님 나라를 결정적으로 보게 해 주셨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마가는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예수님을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으로 그렸습니다. 선한 목자의 보호 아래 있는 양들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무리가 모인 곳에서 같은 이적을 한번 더 행하십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 본 것과 같은 이적을 보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로페니키아 여인에게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7:27)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일차적 관심은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두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셨지만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곤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유대인들을 먼저 배불리 먹게 하신 그분은 이제 이방인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한끼의 허기를 만족시키자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와 같이 모두가 넉넉히 만족을 얻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를 열어 보이신 분이십니다.
기도:
주님 앞에서 눈을 감습니다. 저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에 눈 뜨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귀를 막습니다. 마음을 통해 속삭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가 선 자리가 지성소이며, 저희 존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저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알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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