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표징을 구하는 마음 (막 8:11-21)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13. 05:48

해설:

이 대목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들과 나눈 논쟁을 소개한다.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11절)는 말은 장 시간 논쟁을 벌였다는 뜻이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건 이유는 그를 권력자들에게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함이었다(“시험하느라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적을 의미한다. 

 

마가는 빵 일곱 덩이로 사천 명을 먹인 이적 이야기를 기록한 후 곧바로 이 논쟁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에 대한 그들의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부각시킨다. 볼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번의 급식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 이적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요구한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의 결정판이다. 그들은 이미 주어진 표징을 보려 하지는 않고, 그보다 더 놀라운 표징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12절)하셨다. 그분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실 때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탄식하셨는데(7:34), 그것이 깨달음이 없는 그 세대에 대한 탄식이었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은 “이 세대에게는 어떤 표징도 소용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과 데가볼리 지방(이방인 지역)에 대한 전도를 마치고, 다시 갈릴리 호수 서쪽 유대인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신다(13절). 배에 오르고 나서야 제자들은 빵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4절). 그 때 예수님은 불쑥 누룩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15절). “누룩”은 당시에 어떤 가르침이나 교훈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곤 했다. 누룩이 반죽 전체에 퍼져 부풀게 하는 것처럼, 가르침이나 교훈은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어 있다.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불신, 마음의 완고함, 깨닫지 못함을 뜻한다. 

 

제자들은 누룩의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빵을 가져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고 오해한다(16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이 두번의 급식 이적을 제대로 보았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빵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 근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9-2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달음도 없고 마음이 무디어 있으며(17절, 21절), 볼 눈과 들을 귀가 없다(18절)고 하시면서 탄식하신다. 그 점에서 제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헤롯과 별로 다르지 않다. 

 

묵상: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12절)라는 말씀은 꼭 오늘의 시대를 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도 그랬지만, 오늘의 사람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물질주의에 눈 멀어 있기 때문에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조차 의심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너무도 그럴 듯한 가짜 뉴스와 가짜 영상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주의로 인해 눈이 멀어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표징을 보여 준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더 강력한 표징을 보여주면 믿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볼 눈”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었다면, 이미 벌어진 일들 만으르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이미 알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완고하고 굳어진 마음을 그대로 두고 자신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한 태도에 대해 예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마음이 굳어 있다는 점에서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바로 믿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직 충분히 깨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놀라운 일들을 거듭 보고도, 그들은 놀라기만 했지 그 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음식으로 엄청난 무리를 먹이는 기적을 두번이나 보고서도 그들은 빵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표징 중에 가장 큰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과 그분이 행하시는 이적도 대단한 표징이지만 가장 큰 표징은 그분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표징이요, 그분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이며, 우리의 삶 속에 역사 하신다는 표징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의 사랑이 어떠하고 그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으면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에 오신 하나님 곧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바리새파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놀라운 급식 기적을 두번이나 보고도 여전히 빵 걱정을 하고 있는 제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 마음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의 누룩이 퍼져 있습니다. 이 회의와 불신의 누룩을 제거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작고 사소한 일을 통해서도 주님의 손길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