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절반의 고백 (막 8:27-30)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2. 15. 06:28

해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빌립보의 가이사랴라는 마을에 이르신다. 그 도시는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이 분할 통치하던 지역의 수도였는데, “빌립보가 황제(가이사)를 위해 헌정한 도시”라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이 도시의 지배적인 정신이었다. 그 도시는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예수님은, 그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곳으로 가셔서 갈릴리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방향 전환을 꾀하려 하신다.   

 

이 도시에 속한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던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27절)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각기 들은 대로 전한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헤롯 안티파스에게 죽임 당한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 왔다고도 하고, 죽지 않고 들림 받은 엘리야가 다시 왔다고도 하고, 예언자 가운데 하나가 왔다고도 했다(28절). 마가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전한 바 있다(6:14-16).

 

제자들의 보고를 다 듣고 나서 예수님은 다시 물으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29절) 이것이, 예수님이 정작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답한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29절). 원문에는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 말의 어법을 따라 "당신"을 "선생님"으로 의역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를 의미한다. 원래 메시아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왕, 제사장, 예언자 등에 사용된 용어였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보내실 영원한 구원자를 의미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30절)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아는 것은 마치 벳새다의 눈먼 사람이 희미하게 보는 것과 같이 아직은 불완전한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은 절반만 옳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메시아로서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실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묵상:

예수님이 빌립보의 가이사랴로 가신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째, 그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정리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둘째, 빌립보의 가이사랴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그곳은 로마 황제의 통치권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지켜 보면서 “이분이 과연 누구신가?”라는 질문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최종적인 답을 낼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합니다. 로마 황제의 통치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에서 베드로는 매우 위험한 발언을 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침묵한 것은 베드로의 답에 동의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이었던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엄청난 지적 도약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들은 예수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전제하고 그 질문과 씨름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한 인간이었다고 전제하는 한 그분의 하신 말씀과 행적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로부터 믿어왔고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자신들의 눈 앞에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뤄 왔는데,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그 고백에 대해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입 단속을 명령하십니다. 빌립보의 가이사랴 같은 곳에서 그 사실이 알려지면 당장 체포되어 반역자로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험 때문에 입 단속을 하신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읽어가면서 찾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을 온전히 아는 것이 때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저희의 지식과 경험이 자주 걸림돌이 됩니다. 저희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려 하고 주님의 이적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저희 각자의 지식과 경험의 크기로 축소하려 합니다. 오, 주님, 저희의 믿음이 주님의 크기로 자라게 해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저의 지식과 경험의 장벽이 거듭 깨어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