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다시 <신학과 철학>이라는 과목을
영남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강의 중에 하이데거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Warum gibt es Überhaupt Seiendes, und nicht viel mehr nichts?”
이 문장은 대충 다음과 같은 뜻이다.
존재자들(Seiende)은 도대체 왜 존재하고,
무(nichts)는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가?
우문처럼 들리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존재와 무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통찰이다.
보라. 고양이는 존재한다.
그리고 개나리도 존재한다.
그런데 고양이와 개나리의 중간쯤 되는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없는 것은 무다.
왜 무는 없는가?
왜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는가?
그게 당연한 게 아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은 우연한 결과다.
그 우연은 신비이고, 그 신비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다.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칭의에 대해, 3월24일(일) / 정용섭 목사 (0) | 2025.01.30 |
---|---|
신문 보기, 안 보기(?), 3월22일(금) / 정용섭 목사 (0) | 2025.01.28 |
도둑고양이 / 정용섭 목사 (0) | 2025.01.28 |
음식물 찌꺼기, 3월18일(월) / 정용섭 목사 (0) | 2025.01.28 |
서리 / 정용섭 목사 (0) | 202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