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여호나답과 함께 이스라엘을 개혁합니다. 바알을 섬기던 자들을 모두 부르고 처단을 합니다. 경건한 여호나답과 함께한 개혁은 완성되는 듯하였습니다. 예후의 강력한 개혁은 바알의 신당을 변소로 만듦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바알을 섬기던 이들을 개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후에 대하여 미진한 부분을 기록합니다. 그것은 예후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습니다.
이는 바알의 산당을 없애고, 바알을 섬기는 관료들을 축출하는 일을 하였으나 율법에서는 한 반짝 물러섰습니다. 전심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따랐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도만 개혁하였지 온전한 개혁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후는 하사엘의 공격으로 예후는 무너집니다. 예후의 통치는 28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하는 표현가운데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다"가 있습니다. 신앙은 온전한 회심으로 시작됩니다. 전심이 없는 회심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전심이 없다면 회심하지 않았음입니다.
예수님은 전심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쟁기를 가지고 밭을 가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믿음 전심으로 따르는 일입니다. 세상과 예수님 사이를 적당히 줄타기하는 것은 전심으로 따르지 않음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봉사와 헌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릅답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입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삶이 되기를 소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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