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걷는 행위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고 있소? 이 세상의 많은 생명체 중에서 걷는 이는 오직 인간뿐이라오. Homo erectus! 지렁이는 몸으로 기오. 속칭 돈벌레는 수십 개의 다리로 이동하오. 호랑이와 늑대는 네 다리로 달리오. 모두 안정적으로 지구에 붙어 있는 친구들이오. 두 다리로 걷는 인간만 위태롭소. 마치 외줄을 타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오. 이 위태로움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질적으로 다르게 만든 근본적인 요소라오.
갓 태어난 아이는 그냥 지구에 자기 몸을 의지하고 있소.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가 엎드려서 기기 시작하오. 무릎을 당겨서 네 발로 기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른 손이나 벽, 기둥 같은 것을 붙들고 일어서오.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대단한 비약이오. 세계를 수평에서만 보다가 수직으로 보게 된 거요. 세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거요. 이게 어느 정도로 대단한 사건인지는 굳이 설명을 보탤 필요가 없소. 아이는 어떤 것을 붙들고 서다가 어느 순간에 손을 놓고 혼자 서게 되오. 육체적으로 독립하는 거요. 그리고 한발 두발 움직이오. 어느 순간에 아이는 중심잡기의 달인이 되어 뛰어다니기 시작하오. 한 아이의 발달과정에 인류의 오랜 진화가 그대로 들어 있소. 비약과 비약, 승화와 승화의 반복을 거쳐서 인간은 세상을 걸으면서 살게 되었소. 참으로 놀라운 일이오.
그대는 걷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 마시오. 걷기만 잘 해도 도(道)에 이를 수 있소. 수 년 전에 <나는 걷는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소. 환갑에 이른 프랑스 사람이 파리에서 라다크까지 걷는 과정을 일기문으로 적은 책이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소. 라다크까지인지, 아니면 실크로드를 따라간 것인지 가물가물하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도보 순례에 나서고 있소. 더 심한 경우는 오체투지로 순례를 하기도 하오. 현대인들은 걸을 기회가 별로 없소. 웬만하면 차를 타고 다니오. 편리하기도 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인간성을 점점 상실하는 것 같아서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드오.
오늘도 내가 걸으며 지구의 중력을 느끼며 중심을 잡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모르겠소. 언젠가 ‘그 날이 오면’ 그 모든 익숙했던 경험을 잃어버릴 것이오. 그리고 병들거나 늙어서 누워버리오.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오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걸어야겠소. 3백만 년 전 직립을 시작했던 우리의 조상 ‘호모 에렉투스’를 기억하며, 내가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 일 년 쯤 뒤에 걷기 시작한 그 순간을 기억하며 걸어야겠소.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2010년 9월10일, 금, 높고 낮은 구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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