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나무 잎사귀 닦아주기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5. 06:23

   그대는 집에서 나무를 키우고 있소? 아니면 개나 고양이는 키우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요.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돌보며 살기가 쉽지 않소.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몇 그루와 나무가 하나 있소. 1미터 정도의 기둥으로 뒤에 잎사귀가 우선처럼 펼쳐있는 나무요. 집사람이 키우는 것들이오. 나도 간혹 물을 주곤 하지만 주로 집사람 몫이오. 화초는 물만 제 때 주면 자라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나무는 좀 다르오. 벌써 오랜 전부터 잎사귀들이 말라가고 있었소. 내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린 탓이오. 작은 반점과 솜털뭉치 같은 작은 점들이 생기더니 잎사귀들이 생기를 잃고 있소. 작년에도 결국 모든 나뭇잎을 잘라낸 적이 있었소. 약을 쳐도 해결되지 않는 병이오. 직접 손으로 잎에 묻은 검고 흰 점들을 닦아줘야 하오. 집사람이 바쁜 탓인지 차일피일 그 일을 미루고 있었소.

 

     오늘은 내가 나섰소. 걸레에 물을 묻혀 크고 작은 잎사귀들을 깨끗하게 닦았소. 큰 잎사귀는 길이가 6센티미터 정도이고, 작은 잎사귀는 1-2센티미터밖에 안 됐소. 잎사귀의 윗면과 아랫면의 질감이 완전히 달랐소. 윗면은 매끄럽고 아랫면은 약간 거칠었소. 자세히 보니 반점들이 윗면에는 짙은 고동색이고 아랫면에는 검은색이었소. 그런 점들이 많은 잎사귀는 둘둘 말릴 정도로 말라 비틀리고 있었소. 어떤 잎사귀는 먹물을 뿌려놓은 듯해 보였소. 잎사귀 숫자가 물경 300개는 되었소. 그걸 일일이 닦는데, 아마 두 시간 가까이 보낸 것 같소. 걸레가 시커멓게 될 정도였소.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소. 왜 그런지 알겠소? 일단 잎사귀를 이렇게 오랫동안 세심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게 첫 번 대답이오.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모든 잎사귀가 달랐소. 크기나 색깔도, 달려 있는 모양이나 건강상태도 다 달랐소. 거기에 묻은 먼지의 양도 다 달랐소. 닦은 뒤의 광택도 달랐소. 병든 녀석들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내 정성도 지극했소. 가능한 한 놈이라도 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닦았소. 그러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닦을 수밖에 없었소.

 

   다른 한편으로 글쓰기나 설교, 강의 등, 내가 하는 다른 일보다 잎사귀 닦기가 못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소. 이게 당장 돈벌이는 되지 못하겠지만 내 삶 전체를 투자하기에는 부족할 게 없다는 뜻이오. 돈의 분량으로 가치를 재는 삶의 습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떠날 날이 조금씩 더 가까이, 좀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말이 아닐는지. (2010년 9월3일, 금, 여전한 남국의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