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은 교회생활에서 자주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이 되기 위해서 지불해야만 할 대가이다. 그런 고통을 통한 변혁은 크게 환영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신앙생활의 영역에서 그런 결과들을 볼 것이다. 설교, 교육, 교리에 대한 태도에서, 그리고 선교활동과 교회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그리고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그런 결과들을 볼 것이다.' (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135 쪽)
본회퍼는 하나님을 ‘작업가설’로 여기는 종교성을 넘어서야만 성인이 된 세상에서 기독교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다고 보았소. 기독교의 ‘비종교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오. 본회퍼의 비종교화를 판넨베르크의 용어로 바꾸면 탈권위주의요. 양쪽 모두 성인이 된 세상, 또는 성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전제하는 말이오. 탈권위주의는 단순히 외적인 권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내적인 권위도 포함하는 거요. 교회에서 외적인 권위주의는 쉽게 분별이 되지만 내적인 권위주의는 그게 잘 안 되오. 내적인 부분까지 손대는 것은 기독교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판넨베르크는 그 작업을 고통스럽다고 말했소.
한국교회가 신앙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기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한 가지 문제만 말하겠소. 성서 문자주의가 그것이오. 대다수 한국교회 신자들은 성서를 문자의 차원에서 절대적인 문서로 믿고 있소. 성서가 문자적으로 신성불가침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오. 이것이 왜 문제인지 여기서 무슨 더 긴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성서 문자주의는 마치 시(詩)를 신문처럼 읽는 오류라오. 이런 관점은 오류에 오류를 반복하게 되오. 심지어 구약을 근거로 지구의 역사를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소.
이런 성서문자주의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소. 사춘기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것과 비슷하오. 사춘기를 정상적으로 겪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마보이가 되듯이 권위적 흔적을 지우는 고통이 없이는 미숙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소.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고통을 통한 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요. 대다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고통이 두려워서 엄마 치마폭을 떠나지 않는 아이들과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소. 세계 앞에서 자폐적인 행태를 보이는 거요.(2010년 6월7일, 월, 적당하게 구름이 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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