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28)- 교회비판자들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6. 8. 06:56

'계몽주의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의 권위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와 대결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비판자들이나 옹호자들은 종종 교회의 권위주의 형태를 교회의 실체로 오해한다.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이외의 모든 권위로부터 해방된다. 인간은 모든 것을 판단할 자유가 있다. 이것은 삶의 정치적 형태만이 아니라 교회 조직과 교리들에도 허용된다. 자유라는 은사와 특권은 교회의 선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적 결정들, 그리고 성서 문서들, 더 나가서 예수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행사되어야 한다. 우리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도 인간이 모든 무제약적인 권위로부터 자유롭다는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자유를 확립시킨 메시지 자체가 인간에 의해서 선포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메시지도 다른 모든 권위 주장과 마찬가지로 비판적 검토를 받아야 한다. 인간의 정치적, 지적 실존의 전 영역에는 이 비판적 반성에서 면제될 수 있는 특권 영역은 없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도 이 비판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비판적 검토를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전혀 사람에게 낯선 분이 아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을 배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운명을 배반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된다.'(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132 쪽)

 

     한국사회 안에 기독교(개신교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세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잘 알고 있을 거요. 내가 알고 있는 한 로마가톨릭교회나 불교를 ‘안티’하는 사이트는 없소. 우리 기독교에만 그런 사이트가 있다는 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거겠소. 이 사회의 기본적인 반기독교적인 정신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소. 가장 큰 책임은 우리에게 있소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언급했으니 오늘은 그만 둡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오.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들이나 이들과 맞상대해서 옹호하는 이들이나 똑같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현재 교회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앙행태를 기독교의 본질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오. 예컨대 레드컴플렉스가 그 중의 하나요.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신앙을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마치 반공주의와 똑같은 것처럼 말한다오. 안티 기독교 단체도 그런 행태를 기독교 자체로 보고 기독교를 부정하는 거요. 이런 문제가 어디 한 둘이겠소. 조금 지적으로 세련된 기독교 비판자들은 기독교가 성속이원론이나 실체론적 형이상학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오. 그런 행태가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오. 본질이 아닌 것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허깨비와 싸우는 것과 똑같소.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판넨베르크는 기독교의 그 어떤 권위주의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오.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오. 기독교 교리도 무조건 수호될 수 없소. 루터나 칼뱅이 말했다는 것으로 권위가 확보하는 게 아니오. 진리의 빛에서 조명 받아야 한다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권위를 확보하는 게 아니오. 이런 점에서 오늘 한국의 목사들은 정직하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소. 그들이 강단에서 설교라는 권위에 안주한 채 온갖 잡설을 쏟아낼 때가 많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말을 하면서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소. 생명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설교도 많소. 설교는 비판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오. 비판을 부정하는 것은 진리 앞에서 자신감이 없다는 증거요. 물론 여기서 설교에 트집을 잡아도 좋다는 뜻이 아니오. 진리논쟁을 피하지 말라는 것이오. 위에서 판넨베르크가 말하듯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는 그 어떤 비판도 다 견뎌낼 수 있소.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소. “설교비평이 두려우면 설교하지 마시오.” (2010년 6월5일, 토요일, 더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