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약간 불편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좀 참고 들어주시구려. 오늘 한국교회의 지성인 기독교인들에게 푸념 비슷한 말을 하려는 거요. 혹시 그대도 지성적 기독교인이오? 지성인들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찬밥 신세라오. 한국교회가 반(反)지성주의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오. 지적인 인식 활동을 부정하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교회 풍토에서 지식인들이 견뎌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오.
이런 사태 앞에서 지성적인 신자들이 취하는 태도가 서로 다르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은 교회를 뛰쳐나가는 이들이오. 지금 사회의 NGO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왕년에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이들이오. 지금은 신앙생활 자체를 접은 이들이 많소. <딴지일보> 김 아무개 총재도 그런 경력이 있더이다. 다음으로는 반지성적 풍토에 적당하게 적응한 이들도 있소. 나는 그들이 처음부터 지성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할 수는 있지만 신앙의 세계에서 지성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말이오.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소. 의사, 변호사, 대학 교수, CEO 등등,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순복음 류의 축복관이나 손 아무개 장로의 치유 사역, 장 아무개 목사의 개그 수준의 설교에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이들이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거요. 겉으로는 일단 그렇게 보이오. 세 번째로는 반지성적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계속해서 불평하는 이들이오. 이들은 무엇이 교회의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소. 그러나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를 선택하지 못하오. 그렇다고 해서 교회 개혁을 위해서 줄기차게 투쟁하지도 못하오. 어쩌면 이들이 가장 불행한 신자들인지 모르겠소.
그대는 불평을 하면서도 교회를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 이유야 개인마다 다르니 여기서 어찌 다 열거할 수 있겠소이까.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몇 가지만 적어볼 테니, 맞으면 오, 틀리면 엑스를 하시구려. 1) 모교회이니까 거기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요.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에 빠져 있는 경우요. 2) 다른 교회에 가봐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지 모르겠구려. 맞는 말이기도 하오. 3) 교회의 문제를 부분적인 것으로만 보는 분들도 있을 거요. 그런 경우라면 별로 심각하지 않소. 4) 교회에서 돈독히 맺은 인간관계를 끊을 수 없을 거요. 5) 교회를 옮기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위협이 은근히 신경이 쓰일 수도 있소. 6)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낸 경조비가 아까운 사람은 없겠소? 교회를 옮기면 대개 인간관계도 끊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거요. 7) 교회를 옮기면 사업에 지장이 올지도 모르오. 실제로 중대형 교회에 적을 두고 있으면 개인 사업에도 도움이 될 때가 많을 거요. 8) 교회의 문제를 잘 알지만 교회 조직이 제공하는 메리트에 마음이 끌리면 떠날 수가 없다오. 장로가 되는 게 꿈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거요. 9) 새로운 교회를 찾아 나서기에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들도 있소이다. 10) 자기 혼자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소. 여기까지만 합시다. 딱 열 개를 채웠소.
내 말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구려. 그대를 탓하는 게 아니라오. 또 철새처럼 교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라는 말도 아니오. 교회의 리더 그룹이 이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한 한국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요. 아무리 잘못이 많아도 신자들이 그대로 버티고 있으니 어느 목사가, 어느 장로가 겁을 내겠소.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그때 이어가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끝냅시다.(2010년 4월10일, 토요일, 아파트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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