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137편: 바빌론 강가에서

새벽지기1 2023. 7. 1. 05:13

 

해설:

이 시편은 ‘보니 엠'(Bonny M)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라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개인적인 고난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집단적인 심정을 노래합니다. 

그들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1절)습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과 성전을 두고 울며 기도 했다는 뜻입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다”(2절)는 말은 더 이상 찬송을 부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사로잡아 온 자들” 즉 그들을 “짓밟아 끌고 온 자들”(3절)은 “시온의 노래”를 불러 자신들의 흥을 돋구어 달라고 명령합니다. “시온의 노래”는 시편 46편 혹은 47편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그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한 이유는 멸망 당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두고 조롱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4절). 시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내 깨나 시온만을 생각하며 눈물 흘려 기도합니다(5-6절). 다만, 그들을 짓밟아 끌고 온 자들 앞에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 거리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바빌론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 함락 되던 날에 그들이 했던 악한 말과 행동을 기억하면서 그들도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7-9절).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9절)라는 저주는 악담이 아니라 바빌론 침략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악한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고발하는 말입니다. 그 악한 행위를 기억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묵상: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은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모욕 당하는 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의 불행을 두고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혹은 “하나님을 믿더니 꼴 좀 보라?”고 빈정거릴 때, 우리는 참기 어려운 모욕감을 느낍니다. 내가 모욕 당하는 것은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존귀하신 하나님이 모욕 당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의 징계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모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행한 일을 당하여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일 때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불행에 대해서는 “다들 당하는 일인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탓입니다”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도 이상의 불행을 당하거나 당하는 불행이 오래도록 지속될 때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토록 나를 못살게 굽니까?“라고 저항하게 됩니다. 그런 의문에 사로잡히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식어지고, 냉담함이 계속되면 결국 믿음을 떠나게 됩니다.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73:17) 그 의문과 불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뜬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의문 투성이입니다. 성소에 들어가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 의문이 하나씩 종적을 감춥니다. 현실의 문제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고 그분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