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늘로부터의 소리(막1:11)

새벽지기1 2022. 5. 24. 06:30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11)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예수님의 세례에 관한 공관복음서의 보도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그 순간에 나타난 세 가지 현상에 관해서는 일치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한다는 것, 하늘로부터 소리가 난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이 세 가지 현상은 예수님의 세례 사건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는 뜻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을 바꿔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는 아직 제자들을 선택하기 이전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수발을 들던 제자들이 없었다면 도대체 누가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지켜보았다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전달했을까요? 예수님이 스스로 그 일을 제자들에게 알리셨다는 말인가요? 복음서에는 그런 보도가 없습니다. 아니면 요한이 그렇게 했나요? 이런 보도도 없습니다.

 

이 사건은 아무래도 역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세례 사건은 역사적이지만 거기에 따른 세 가지 현상은 신앙고백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입니다. 흡사 예수님의 탄생설화가 역사적인 게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인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를,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에 관한 신앙고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인 역사만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역사를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역사는 죽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해석을 통해서 훨씬 역동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사실적인 역사(Historie)보다는 해석된 역사(Geschichte)가 훨씬 중요합니다. 신약성서는 예수에 관한 역사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해석된 역사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역사가 섞여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세례 순간에 나타난 세 가지 현상은 그것이 비록 사실적인 역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 세 번째가 곧 하늘로부터의 소리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도대체 하늘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말입니까? 물론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부신 빛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많은 족장들, 모세, 여호수아, 사사, 수많은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히브리말로, 혹은 아람어로 직접 말씀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처럼 성대를 통해서 직접 그렇게 소리를 내신다면 오늘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말로 말씀을 하신다는 말이 되겠군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이 지구에 있는 수백 가지 말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하시겠네요. 하늘로부터 소리를 듣는다는 건 실제로 어떤 소리가 울렸다기보다는 일종의 신탁(神託)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에 표현된 하늘로부터의 소리가 직접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니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훨씬 깊은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환청일 가능성이 높지만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그건 분명히 영적인 귀가 열렸다는 증거입니다.


금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입니다. 그는 5살 때부터 작은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해서 35살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소나타, 각종 악기의 협주곡,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도대체 그런 음악가들은 어떻게 작곡을 하는 걸까요? 그들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들리는 소리를 악보에 옮겨 적을 뿐입니다. 평범한 작곡가들은 억지로 쥐어 짜내지만 대가들은 이미 음악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놀라운 음을 만들어냅니다.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음악이 자기를 통과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우리는 하늘로부터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많은 소리의 홍수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는 소리가 얼마나 들리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하늘의 소리가 울려나고 있을까요? 생명의 신비가 오늘 열리며, 선포되고 있을까요?

주님, 우리는 영적인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영혼의 귀를 맑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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