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김춘수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장정일 시인의 시 「라디오와 같이」를 하나님께 드리며
‘전도는 그를 살립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라디오와 같이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 몸짓에 불과하던 존재가 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장정일 시인은 누군가 단추를 눌려줄 때, 네모 상자에 불과하였던 라디오는 전파로 변해,
음악이 되고 시가 되어서 메마른 가슴을 적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름을 불러주고 단추를 눌러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가요.
창세기 2장을 읽어 보면 하나님이 들짐승과 각종 새를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아담은 창세기의 이름 짓는 시인이었습니다.
창세기 만물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어 존재의 의미를 피어나게 한 것입니다.
이름을 지어주면서 아담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옛적 아이들의 놀이 가운데 ‘다방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술래에게 잡힌 아이들이 마치 포로같이 전봇대 같은 기둥에 손을 잡고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때 술래가 잡지 못한 자유로운 아이가 술래를 피해 요리조리 피해다니다가 잡힌 아이들의 손을 터치하면서
‘다방구’라고 외치면, 기둥에 줄지어 서 있던 아이들이 모두 풀려나게 됩니다.
전도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참 멋진 성경적인 놀이입니다.
김춘수 님의 시 「꽃」에 보면 후반부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장정일 님의 시 끝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 와서 /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립니다.
그 누구도 하나의 몸짓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꽃으로 피고 싶고, 의미로 남고 싶은 것입니다.
‘전도’ 하고 ‘선교’ 하는 것이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 그 이름을 불러 주는 것입니다.
그가 하늘 나라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장 38절에서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1:38)
예수님은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몸짓에 지나지 않고, 네모상자에 지나지 않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전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보람있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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