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하도다

‘시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의 시 ‘불쌍하도다’입니다.
시인은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더군다나 세속적 욕망을 좇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 척, 고상한 척하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려는 위선적 자아를 더욱 부끄러워합니다.
앞뒤가 전부 못난 사람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앞뒤의 편차가 큰 사람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며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한결같이 앞뒤가 다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같이 못났으면서도 자신은 고상한 척하며 위선에 차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우리는 모두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이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예쁜 죄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주께 아뢰고 긍휼을 구하는 자이고,
‘미운 죄인’은 자신이 의인인 양 목이 곧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옷자락이 다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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