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시인은 예루살렘이 당한 재앙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히브리어로 ‘어쩌다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이 당한 재앙에 대한 탄식입니다.
시인은 과거에 예루살렘이 누렸던 영화를 생각합니다. 그 도성은 마치 여왕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종처럼 낮아졌습니다(1절). 예루살렘은 마치 버려진 여인이 밤새워 통곡하는 것과 같습니다(2절). 예루살렘 주민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항상 북적 거리던 시온으로 가는 길에는 인적이 끊겼습니다(3-4절). 이제 예루살렘은 대적들의 손에 넘어가고 유다의 지도자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5-6절).
시인은 과거에 예루살렘이 누렸던 영화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깨어진 것은 그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대적들은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유다 백성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입니다(7-11절).
그가 당하고 있는 일은 그의 죄로 인해 받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12-15절). 그로 인해 시인은 통곡합니다. 그는 주님의 심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합니다(16-19절). 하지만 그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들을 멸망시킨 대적들의 죄도 잊지 말고 심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20-22절).
묵상: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위로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홀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한 슬픔을 견딜 만한 내면적인 힘이 기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통해 마음 깊은 위로를 받으면 슬픔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 있던 마음이 한 순간에 치유를 받습니다. 슬픔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위로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은 누군가가 위로한다고 던진 말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혀서 슬픔을 더 가중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위로를 경험하는 일도 드문 일이고, 누군가에게 진실된 위로를 해 주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당한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고 슬퍼합니다. 첫 번째 시편에서 그는 거듭하여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고 토로합니다(2절, 9절, 16절, 17절, 21절). 어떤 사람들은 유다 백성이 당한 일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냉담하게 등을 돌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당한 일을 보고 고소해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당한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날까 두려워 피합니다. 당한 불행 보다 모두에게 버려졌다는 것이 더 큰 아픔입니다. 모두에게 버렸다는 감정만큼 절망적인 것이 따로 없습니다.
그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합니다. 비록 자신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았지만 지금 그들 곁에 있어서 호소를 들어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미야 애가 3장: 묵상의 힘 (0) | 2021.12.01 |
---|---|
예레미야 애가 2장: 발칙한 기도 (0) | 2021.11.30 |
예레미야서 52장: 성취된 예언, 성취될 예언 (0) | 2021.11.27 |
예레미야서 51장: 비록 악이 강할지라도 (0) | 2021.11.26 |
예레미야서 50편: 영원한 권력은 없다 (0) | 202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