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레미야 애가 2장: 발칙한 기도

새벽지기1 2021. 11. 30. 07:17

 

해설:

이 시편은 성경 안에 있는 모든 시편들 중 가장 강력한 언어로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대해 비판합니다. 유다를 멸망시킨 것은 느부갓네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악행을 그대로 두고 보셨기 때문에 그런 재앙이 닥쳤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모든 재앙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립니다(1-10절).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4절, 5절) 작심하고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 시키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두신 성전도, 그곳에서 그분을 위해 섬긴 제사장들도 모두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토록 잔인하게 짓밟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11절부터 시인은 1인칭으로 화법을 바꿉니다. 그 자신이 ‘처녀 시온’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고통을 묘사합니다. 이로써 유다 백성이 겪는 고통은 더욱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시인은 유아와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통곡의 눈물을 쏟아 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하나님께 알리는 것 뿐입니다. 그분의 심판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아시면 혹시 마음을 돌이키실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우리는 시편에서 가끔 ‘저주 시편’을 만납니다. 시편 109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원수에게 앙갚음을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 중에 사용된 언어와 표현들이 충격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려도 되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저주 시편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것이라면, 예레미야 애가 2장은 하나님에게 악담을 퍼붓는 기도입니다. 저주 시편보다 한 술 더 뜬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당한 모든 재앙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묻습니다. 자신들이 벌 받을 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해도해도 너무 하신 것이라고 고발합니다. 아무리 진노하셨다고 해도 앞뒤 분간 못하는 유아들까지 고통을 당하게 해야 했느냐고 따집니다. 참으로 발칙한 기도입니다.

 

시편에 저주 시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하나님을 향한 이런 발칙한 기도가 애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도 때로 그런 상황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데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억울한 마음을 쏟아 놓습니다. 때로는 어떤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무 하신다’ 혹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느낌에 빠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에게 나아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쏟아 놓습니다. 그럴 때, 그 분노와 서운함의 감정을 해소하고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죽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언제나 진실하게,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분노와 서운함이 있다면, 그대로 그분 앞에 쏟아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