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글쓴이/봉민근
때로는 사실이 왜곡되어 오해를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 분노가 일어난다.
또한 불의를 볼 때에 끌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란 힘이 든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투사가 되기도 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온갖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주님도 성전에서 비둘기 파는 자들을 향하여 분노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질책도 쏟아 내셨다.
어떤 사람들은 무조건 오른뺨을 치는 자들을 향하여 왼뺨도 대라고 가르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도 해야 하지만 불의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참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고치고 바꾸어 변화시켜야 할 소금과 같은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찌 보면 나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인들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것에 굴복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처사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썩어가는 감자가 있다면 그곳에서 다른 감자까지 썩기 전에 옮겨야 한다.
한국 교회가 오늘날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했기에 교회 내에서 수많은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상생이라는 말이 좋기도 하지만 이는 서로 눈감아 주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불의의 대가를 나누자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주님의 제자라면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악인과의 타협은 죄와의 타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처럼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정쩡하게 하나님 편도 아니요 세상 편도 아닌 그런 태도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
진리는 깨끗하며 결코 죄와 타협하거나 함께 하지 않는다.
진리는 선명하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해 준다.
불의와 타협하거나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은 죄가 된다.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세례 요한이나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그 길을 가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태도다.
그리스도인이 침묵하면 세상은 날로 썩는다.
요나처럼 세상과 니느웨 성을 향하여 외쳐야 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목회자가 탈선하고 성도들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오늘 내게 필요하다☆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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