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 32장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새벽지기1 2021. 9. 5. 08:19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여러분 자신의 뜻을 복종함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것은 책에 기록된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살아있는 영혼의 지식 그것 자체가 영생인 지식이다.

 

이것은 여러 종류의 이유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의지작용은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서 일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라고 기록해 놓았다. 먼저 소원을 두고 그 다음에 행하게 하신다. 비록 여러분 자신이 영혼 안에서 이 모든 의지 작용과 의지 활동을 하지만 그렇게 하게끔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신 것이다.

 

여기에서 자칫 잘못하면 여러분 자신의 의지작용은 마치 시늉 내는 것에 불과하며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꼭두각시 같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것에 대해서 예리하고 명백하게 규정짓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여러분 자신의 자아는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속에서 그렇게 행하게 하심을 따라 작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 하심대로 행하고, 달리는 행치 않으려고 의지를 행사하는 사람은 실제로 여러분 자신인 것이다.

 

이것을 명백히 알아보는 데는 약간의 노력이 들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규정들로 인해 지치지 않기 위해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줄 충고를 쉽사리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영적인 게으름을 촉구하는 충고에 따르면, 여러분은 스스로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의사에게 간단한 신경조직에서 구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는 혈관에서 얼마나 다양한 병균들이 발견되는지 물어보라.

 

사람이 없어질 육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이 수고하면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혼을 위해서는 수고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러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인체의 구성에 관한 소형의 책자, 가능하다면 삽화가 그려진 책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영혼에 관해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는 영혼에 관한 모든 조사와 연구가 결핍되어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자신의 영혼, 의지, 이해력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아주 무질서해진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내적 자아에 대해서 문외한이 되고 만다. 그는 영혼 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의 집 마을 도시 심지어는 외국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영혼의 방과 아치형 복도들로 통하는 열쇠는 절대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다. 사람은 자아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영혼을 무시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에 언급된 규정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한 순교자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그는 분명 자기 스스로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위해 죽기로 한 의지작용은 분명 그 자신의 행동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죽을 각오로 한 그 자아(ego)는 그의 본성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사실을 밝게 깨달을 수 있기 위해 배를 예로 들어 보자. 배의 고물에는 키가 있고 키에는 손잡이가 붙어 있어 조종사에 의해 조종된다. 항해 중에 배를 조종하지 않는다면, 배는 바람과 파도에 밀려 다니게 된다. 그러다가 배가 뒤집어지면 키도 뒤집어진다. 키가 뒤집어질 때에 손잡이도 뒤집어지게 되며 이에 따라서 키의 손 잡이를 잡고 있던 손과 팔이 무의식중에 앞뒤로 움직이게 된다.

 

의지 없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라. 그는 인생의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대로, 즉 환경의 외부 세력과 자신 감정의 내부 영향을 받아 떠내려간다. 삶이 그를 이 방향으로 끌고 가면 저리로 끌려간다. 그에 따라 키도 뒤집히고 손잡이와 키 조정 장치를 잡고 있는 손, 즉 그의 의지도 뒤집히게 되는 것이디.

 

의지 없는사람! 그러나 배를 조종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키 조정 장치를 잡고 있는 사람이 행로를 조정한다.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다. 바람과 파도가 그의 항해를 방해할 때에 그는 맞서서 대항한다. 그때 그는 손으로 손잡이를 힘껏 잡고 방향을 바꾸어 키로 하여금 바람과 파도를 막도록 한다. 그리하여 배 조정 장치의 조정을 받는 배는 파도나 바람이 지시하는 대로가 아니라 배를 조정하는 사람의 뜻대로 파도를 뚫고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게 된다. 인생의 바다를 표류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배를 조종해 나가는, 의지적 지각과 의지 능력을 가진 인격적인 사람은 이와 같다.

 

그런데 또 다른 경우가 있다. 키 조정 장치에서 훨씬 떨어진 배 갑판 위에는 선장이 서 있고, 그는 조정 장치에 한 항해사를 배치해 놓았다. 선장은 뱃길과 배가 도착할 장소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는 기관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으므로 배가 우측으로 가야 할지 좌측으로 가야 할지를 기관수보다 더 잘 안다. 따라서 기관수, 즉 항해사가 해야 할 한 가지 의무는 갑판 위에 있는 선장의 명령을 듣고 그 명대로 배를 항해하는 일이다.

 

인간 영혼에 적용해 볼 때에, 하나님은 갑판 위에 있는 선장이시고 우리는 조정 장치에 있는 항해사이다. 만일 우리가 영혼의 작은 배의 손잡이를 붙들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복종시키며 그분께서 명하시는 대로 조정 장치를 움직이면 아무런 위험 없이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안전하게 소원하던 인생의 항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평생 계속되면,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게 되어 마침내는 갑판에 계신 선장, 즉 하나님께서 왼쪽으로 가라 하실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명령하실지를 추측으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점점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항구 즉 영생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아에게 그렇게 역사하심으로 마침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같아지는 과정은 외적인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땅 낮은 곳에 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멀리 떨어 진 높은 곳, 즉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 영혼에게 기계적인 자극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이것은 갑판 위에서 배 항해하는 항해사에게 명령 하는 선장과 같다. 외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외치는 사람은 공기를 진동시킨다. 공기 진동은 항해사가 서 있는 곳까지 퍼진다. 이 진동하는 공기가 항해사의 귀로 들어가 그의 청신경을 자극한다. 이 청각의 움직임이 두뇌에 전달된다. 이리하여 선장의 직접적이고 계속적인 명령이 동료의 두뇌에까 지퍼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더 강렬하다. 우리 영혼에 대하여 그리고 영혼 안에서 우리 위에 사역하시는 하나님은 편재(偏在)하고 계신다. 그분은 높이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 더 나아가 ”가까이’’란 말도 오히려 표현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 안에 하나님께서 안 계신 곳은 한부분도 없다.

 

모든 사람에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대할 때에 이러한 내적 존재는 훨씬 더 가깝고 보다 더 친밀 하다. 왜냐하면 신자 속에서 그분은 성령에 의해서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여러분이 성령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속에 거하시며, 그 자녀의 가장 은밀한 곳에 그분의 왕좌를 갖고 계셔서 먼 곳이 아니라신 자 자신의 인격 성소 안에서 그의 자아와 교제를 가지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아 위에서 역사하신다. 그분께서는 밤낮으로, 심지어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할 때에도 우리 자아 위에서 수고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각가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영혼 속에 자신의 형상을 조각하시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그분 자신을 닮아가게끔 하신다. 

 

출처 자기부인 /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