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카이퍼

제34장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새벽지기1 2021. 9. 7. 05:57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 이루어지이다” 구절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구절이 영어 성경에서는똑같이 "Thy will be done"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두 구절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주기도문에서는 그 말이 ‘‘하나님이여, 나에 의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Thy will, 0 God, be done by me)"를 뜻한다. 반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하나님이여 당신의 뜻이 내게 임하게 하시어, 내 원대로가 아니라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Let Thy will, 0 God, come upon me, let thin gs happen with me not as I will. but as thou wilt)"란 뜻이다.

 

두 번째 기도는 영생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는데 크게 기여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같게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의지를 변화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더 잘 닮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 관해 명령하신 것을 행하려 하며, 기꺼이 하나님의 경륜(His council) 가운데 우리의 운명(분복)으로 정해 놓으신 것에 적용하며, 불평이나 잡음 없이 영웅적인 신앙의 용기로써 우리의 분복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고통이란 우리가 우리의 분복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뜻을 수동적으로 견뎌야 하는 고통을 말한다 “나로 하여금 하늘에서 천사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기도는 우리의 힘을 격려해 주며, 그 뜻에 대해 긴장하게 한다. 우리가 죄를 극복하면 우리 마음에는 큰 즐거움이 넘친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예정해 놓으산 것을 감수하겠노라고 자신을 맡기는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적어도 이처럼 낮아지는 고통의 학교에는 힘이 솟지 않고, 의지를 북돋워 줌과 영웅적인 담대함의 미소 대신에 자아를 완전히 상실케 하는 것으로써 내적 원기 상설과 의지의 억압 그리고 마음에 사무치는 슬픔의 눈물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얻게 해 주지만, 대부분은 알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동반한 아주슬픈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특별히 문제가 잠깐의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평생에 걸쳐서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경우에 마음에 충격을 주게 된다. 

 

다음에 나오는 예는 인생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아주 행복한 한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자녀와 더불어 즐겁게 살아갔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넘치는 행복감을 자주 감사와 찬양으로 표현했다. 그녀가 섬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은 아주 컸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아주 행복하게 해 주셨고 그녀의 잔은 넘쳐 흘렀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다. 중한 질병이 그녀의 평안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가 갑자기 사망하게 됐다. 이제 모든 것은 다 가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위안받을 수 없다. 그녀의 깊이 상처받은 영혼은 하나님께 반항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생활은 모두 자아 기만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잔인하게도 그녀를 높은 행복의 언덕에서 사별과 슬픔의 골짜기로 내던져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고통 가운데서 그녀는 절망적이고 도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만 한다. "나에게 더 이상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지 말라. 잔인한 것은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라고. 인생의 행복이 깨어지자 영혼의 신앙도 깨어지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하나님께서 그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모습을 나타내시자 그녀는 모든 신앙을 저버린다. 그녀는 남편, 자녀와 더불어 하나님도 잃어버린다. 여기서 여러분은 고통의 학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 증가가 얼마나 어려운 학습인가 알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주 무거운 십자가가 우리 어깨에 메어질 때 우리는 이성을 잃고 어리동절해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너무 아름다워 달콤하게 우리 영혼 속에 스며든다. 오로지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한 사랑, 우리를 위한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느 누구인들 기꺼이 그러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삶 가운데 사랑, 오로지 사랑만이 우리에게 보여질 때는 실로 영광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사랑, 행복, 평화만을 주는 어떤 하나님을 소유했다면 얼마나 풍부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역경, 고통과 예기치 못한 불운, 질병과 슬픔의 날이 동터온다. 과연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 있는 것일까? 어버이와 같이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죽어가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를 살려주시지 않고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도 않고 오히려 고의적으로 나에게서 그들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가정에 질병을 주시고 또 너무 잔인해서 말로 할 수 없는 일로써, 나의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를 죽이셨다. 그분은 그들을 나의 가슴에서 잡아 채어 무덤으로 가게 하셨다.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해 더 나온 지식,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몽상했던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상상해 왔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정화되고 순화되어 또 다른 하나님, 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너무 비참한 영적 씨움이 있게된다.

 

첫 번째 학습은 실생활에서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더 높은 섭리에 굴복하고 우리 자신은 아무 것도 할수 없는 데 비해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는 능력 많으신 분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무시무시해 보이나 바로 이것만이 여러분의 실제 경험 속에 계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십자가를 지는 첫 단계에 있을 때에는 당면한 과제 즉 자신의 행복, 명예, 미래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은 부차적인 것이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리가 사물의 중심이 되며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자녀를 위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단지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순서를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즉 인간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인간의 종으로 격하시켜 놓은 것이다.

 

그런데 연단을 통해 이 잘못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점점 교정되어진다. 슬픔과 비탄에 빠져 낙심한 여러분은 순간적으로 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의하지 않으시며 여러분의 소원대로 일을 성취시켜 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분의 계획 안에는 여러분이 전혀 좋아하지 않는 목적들도 있다는 것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강타를 쳐서 여러분을 파멸시키실 수도 있으며 그분의 계획과 능력있는 사역 안에서 여러분은 차바퀴 밑에 깔리기도 하며, 바람에 휘날리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의지를 굽힐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시련 앞에 아주 무력하게 서 있는다. 찬란한 햇빛과 떠 있는 구름만 보이던 하늘에서 여러분은 지금 영혼 속에 어두움을 몰아오고 여러분의 마음에 천둥소리를 내며, 자포자기해 있는 여러분에게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통해서 여러분을 전적으로 압도하는 하나님의 실재와 위엄, 그리고 여러분이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왔던 모든 것들과 여러분 자신을 그분 속에 끌어 들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은 처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해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시다. 이제야 비로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참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려는 영혼의 새로운 노력이 시작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 추측해 보며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괴로운 심정은 죄의식과 죄, 과거 잘못한 일에 대한 여파 우리에게 지워진 십자가의 목적 영원한 나라에서 맺혀질 열매 등에서 그것에 대한 설명을 추구한다. 하나님께서 홀로 우리 속에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오랜 시간 계속된다.

 

영혼의 신앙 추구가 계속됨에 의해 우리는 욥과 같이 친구들의 잘못된 이론을 저버리고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답변을 받아 하나님의 작정이 온 천체와 시간, 세월을 위해 역사하시며, 모든 피조물이 유일하시고 중심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운행되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은 하늘같이 높으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사실과, 그분의 예정에 대한 확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나 또는 슬픔을 통해서라도 예정된 삶 속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영혼의 영광이며 환희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무기력한 소극주의를 물리치고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잔을 마실만한 영웅적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그리하여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을 마시게끔 해 준다. 예수께서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일에 협조하시기 위해서, 기꺼이 골고다에서 죽으시려 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우리를 죽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잔을 마시려 하는 것이야 말로 영생을 찾는 길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전쟁터에서 총에 맞으면서도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죽는 마당에서 장교의 인정해 주는 표정을 보고 흐뭇해 하는 파수병과 같은 것이다. 그가 죽어가면서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죽게끔 한 장군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