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무엇에 지배를 받고 삽니까? - 비전일까? 욕망일까?(4)

새벽지기1 2021. 6. 6. 07:04

무엇에 지배를 받고 삽니까? - 비전일까? 욕망일까?(4)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인 사람에게 의미있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바로 “문화명령”입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창조의 영광이 온전히 빛나고 있는 에덴동산을 주시고 내리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폭력적인 지배와 파괴적인 난개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를 그렇게 무너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분명하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구체적인 명령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동산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다스림(아바드)은 동산에 옷을 입히는 것이고, 경작하는 것이고, 일하는 것입니다. 즉 문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또한 지키다(솨마르)는 보호하고, 보존하고 책임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창조세계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난개발로 파괴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화를 만들고 책임있게 보존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의 책무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 책임이 무엇보다도 막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므로 대리 통치자의 사명에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타락은 대리 통치자의 사명을 오해하였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주권적인 통치자로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문화의 오염과 자연과 기후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왜곡은 비전과 욕망의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무엇에 지배를 받고 있느냐에 따라서 욕망과 비전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면서, 욕망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비전과 욕망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점은 지배의 영역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표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받은 자로서 성공에 지배를 받고 사느냐, 소명에 지배를 받고 사느냐에 따라서 욕망과 비전의 삶이 구분될 수 있습니다. 성공에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은 성공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성공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공은 세속적인 지위향상을 의미합니다. 을의 자리가 아니라 갑의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저지대가 아니라 고지대를 소망합니다. 존경받는 자리가 아니라 부러움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역사의 인정이 아니라 현실의 대우가 중요합니다. 내면의 소리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즐기는 것입니다. 성공의 지배를 받으면 그러합니다.

 

광고를 보면 성공이 주는 쾌감을 알려줍니다. 좋은 차와 넓은 집에 지배를 받습니다. 성공하여 우선하고 싶은 것은 집과 차를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모습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에 지배를 받으면 무엇을 하든지 욕망입니다.

 

반면에 비전은 소명에 지배를 받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부르신 이유를 묵상합니다. 소명에 따라 살기에 세속적 욕망과 싸울 수 있습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신동식, 『청년 길을 찾다』,(우리시대. 경기,2018), p37].

 

비전은 세상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광야를 훈련의 장으로 삼았던 모세, 노예 해방을 위하여 일평생 헌신하며 온갖 죽음의 고비를 견디어 냈던 윌리엄 윌퍼포스, 최고의 외과의사의 명성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재능을 바치고 자발적 불편을 살았던 장기려박사등이 소명의 사람이다[신동식, 『청년 길을 찾다』,p39-40]. 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소명에 지배를 받으므로 성공이라는 욕망과 싸워서 이긴 것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고 고단한 일이다. 그러나 싸울수 있는 힘은 소명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이다.

 

성공에 지배를 받고 사는가? 소명에 지배를 받고 사는가? 이 갈림길에서 욕망과 비전의 모습이 달라진다. 모두가 힘을 다하여 살아갈 때 그 중심이 무엇에 지배를 받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욕망의 사람이 아닌 비전의 사람이 되는 길은 협착하고 좁은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광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