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16일
가뜩이나 골치 아픈 신자의 삶, 주일설교도 적용하기 바쁜 세상에 웬 영화이야기입니까?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9:25)’. 영화묵상이 신자에게 도움이 된다, 해가 된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때로는 영화의 한 장면이 예의상 들어줘야 하는 억지형 설교보다 가슴에 깊이 와 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는 수사학적 논리와 설교학의 공식과도 상관없이 냉랭하고 어두운 영혼을 숭고한 영적체험에 이르도록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술작품이라면 우리의 작품도 역시 하나님의 작품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집으로…’를 묵상해 봅시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한참 걸어, 일곱살 상우는 가정형편상 외할머니 댁에 맡겨집니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꼬부랑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진 도시아이 상우는 생애 최초의 문화적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영악한 도시 아이답게 상우는 자신의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가 그렇듯 짓궂은 상우를 외할머니는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애지중지하던 요강을 깨고, 전자오락기의 밧데리를 사기 위해 잠든 외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훔치고, 양말을 꿰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구들장이 꺼져라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상우는 계속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망나니짓을 하며 외할머니를 괴롭히지만 외할머니는 묵묵히 손해를 감내하시며 늘상 가슴을 쓸어 내리시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손짓할 뿐입니다. 한밤중에 볼일을 보는 녀석을 따라가 기다리시고, 한나절 걸려 읍내에 나가 나물을 팔고 장대비를 맞으며 돌아 오시면서도, 당신은 굶고 녀석에게만 자장면을 먹이시면서도, 녀석은 버스를 태워보내고 당신은 먼길을 지팡이로 걸어 오시면서도 늘 미안하다고만 하십니다.
어찌보면 평범한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향수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상우는 어떤 일이든 막무가내로 부모를 졸라왔던, 아니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버릇없는 손자를 보듬는 할머니는 자신의 몸뚱아리가 하나씩 둘씩 떨어져 버리더라도 내리사랑을 멈추지 않으시는 우리들의 부모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울적한 감정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명절에 한 두번 찾아뵙고, 어버이날 꽃 한송이로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돈봉투가 다가 아니고 할머니께 바늘을 꿰어주는 상우의 작은 행동처럼 ‘부모님 곁의 효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내 몸매 가꾸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처럼 겹겹이 쌓인 부모님 주름을 펴는데도, 거칠어진 손등을 다듬는데도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모처럼 온가족이 모이면 아이들 좋아하는 비싼 피자집만 가지말고 부모님 좋아하시는 장터 순대국집도 가야합니다. 내 입맛으로는 분명이 짠맛이라도 미각을 잃어버리신 부모님께서 싱겁다 하시면 싱거운 줄 알고 밥상을 차려드려야 합니다.
김치 해놨다고 하시면 경제적 논리로 따지거나 갔다 줬으면 하는 바램을 버리고 즉시 가져다 감사히 먹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을 빙자한 ‘고르반'(막7:11)신자가 되지 않도록 전화에 충실하고 기독교의 효는 다음에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내에서도 주의 은혜를 빙자해 어른들께 무례히 행치 않도록 해야하며 새로운 패러다임 요구에 대응하는 길이 정년을 자꾸 낮추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년주일학교는 간식이 남아돌아도 노년주일학교는 왜 프로그램조차 없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어머님께, 인정 많으신 부모님들께,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는 자녀들에게, 이제까지 받기만 했던 불효자인 나 자신에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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