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MBC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새벽지기1 2020. 2. 5. 07:10



이동원목회컬럼 - MBC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말은 요즈음의 기독교계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교계를 대표하는 기관인 한기총은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고, 또 다른 교계의 축인 소위 개혁세력은 MBC가 자정 능력을 잃은 교계를 질타한 것을 교회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MBC의 기독교 비판이 일부 교회 현실을 마치 전 교계의 부패로 과장하여 엇비슷한 보도 내용을 재탕 삼탕하고 몰래 카메라나 몰래 녹음기를 동원하여 인터뷰 아닌 단편적 대화들과 설교 내용을 짜깁기 하는 등 보도 윤리의 정직성을 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비판에 대하여 교계의 보편적 정서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억울하다는 교회 지도자들의 울분을 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부패한 언론 스스로의 현장, 그리고 부패한 기독교 외 타 종교의 현장은 슬며시 덮어두고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개신교의 조직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부의 관행이나 부패를 마치 전체의 오류나 부패로 과장하여 마치 개신교회가 이 사회의 부패의 온상인 듯 집중적인 메스를 드리대고 있는 저의에 대하여 ‘도대체 왜?’ 라는 반문을 던지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의견 표현을 접할 때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지상 생애를 사시면서 억울한 일을 누구보다 많이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부분 예수님의 반응은 ‘침묵으로’ 매우 일관성 있게 반응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침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분의 침묵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진실을 아시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경우를 한국 교회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잘못 할 수 없는 분이셨으나, 우리의 경우 예외 없이 오류를 피할 수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지 않은 억울한 부분에 대하여는 우리도 하나님이 아시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침묵하면 되고, 우리가 명백하게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정직하게 고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부족한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더라도 MBC의 이런 악의적 비판으로 한국 교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관만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신 동역자에게 제가 이런 말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MBC의 비판 정도로 무너질 한국 교회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무너짐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물론 제 내면의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세상의 비판이나 공격으로 주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무너진 사례는 없었습니다. 흔들린 일이야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기도 했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일시적인 주님의 징계 행위이었을 따름이고 이런 일에 쓰임 받은 앗수르나 바벨론은 성경의 증언처럼 그들도 주님의 단기적 막대기나 몽둥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손에서 쓰임의 목적을 성취한 후에는 어김없이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구한 비전을 성취하는 공동체로 다시 일어서서 미션을 수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MBC도 이런 막대기에 불과하다면 막대기를 쥐고 계신 주님을 볼일이지 막대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0년, 30년이 지난 후 우리는 다시 MBC라는 단어나 존재의 의미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지체한다면 그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지상명령의 성취를 위해 소명의 빛을 발하는 교회의 존재를 변함없이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MBC-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숙제에 대한 저의 결론적 고백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그대로 내버려 두자는 것입니다. 시청 앞에서 데모하는 일도, 시청 거부를 하는 일도 다 부질없는 에너지 소모요, 시간 낭비요, 또 우리들 자신의 또 다른 자학 행위일 따름입니다. 억울한 부분은 모든 것을 우리 보다 더 잘 아시는 살아계신 주님께 맡기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지적된 공감할 수 있는 우리 내부의 어둠과 아픔에 대해서는 계속 우리 자신의 고침과 새로움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MBC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를 향한 이 사회의 기대를 MBC가 대변하고 있다고 거룩한 착각을 하기로 하십시다. 그리고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약할 그때가 오히려 우리의 강함이고, 우리가 부끄러운 이 순간이 바로 우리의 거룩함이요, 우리의 넘어짐의 이때가 바로 우리가 다시 일어 설 시간인 것을. 그러면 MBC여,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MBC ‘뉴스 후’ 방송으로 ‘뉴스 후’ 가슴앓이로 아파하는 작은 목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