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설교에서 시간이 부족해 그냥 넘어간 부분이 있어 짧게나마 짚으려 한다.
설교에서도 말했지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말이 안 되는 모순이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명제와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는 명제는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명백한 모순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차적으로 이 말씀의 모순됨을 인식해야 한다.
모순이라는 걸 인식하지 않고 그냥 ‘아멘’ 하고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믿음의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믿음을 핑계로 기본적인 인식이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성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이성을 소외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모순이라는 사실에만 머물러도 안 된다.
모순이라는 걸림돌에 막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이다.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의 신비를 판단하는 오만을 자행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아예 믿음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요한이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두 명제를 나란히 병렬시킨 것은 두 명제가 모순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명백한 모순임을 알면서도 그 모순이 진실이기 때문에 나란히 병렬시킨 것이다.
본시 믿음의 인식이란 게 그렇다.
믿음의 인식은 이성의 인식을 하면서도 이성의 인식을 넘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증할 수는 없지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믿음의 신비다.
그러니까 요한이 말한 두 명제는 모순이 아니어도 문제고, 모순이기만 해도 문제다.
두 명제는 일차적으로는 모순이고, 이차적으로는 모순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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