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빛보다 더 밝은 빛 (딤전 4:3)

새벽지기1 2016. 12. 14. 07:21


교회는 ‘하나님의 표준’에 서 있어야


열심은 부러움보다 두려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열심이 없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이다. 열심의 결핍은 신자 뿐 아니라 교회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신자는 감동을 맛보지 못하며 교회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주 신자와 교회는 열심을 가지도록 권면을 받는다. 하지만 열심이란 것이 언제나 당연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심 때문에 심각한 지적을 받는 사례가 비근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심도 문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유별난 열심을 내세웠던 엘리야의 모습은 그렇게 칭찬할 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전에 올라온 바리새인이 기도 중에 자신의 열심을 죄다 늘어놓은 것을 주님께서 긍정적인 의미로 설명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그들에게 열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열심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열심이 지나친 것은 열심이 모자란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열심의 결핍 뿐 만 아니라 열심의 과도이다. 지나친 열심의 뿌리에는 종종 교만한 마음과 과시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심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사람에게서 나온다(롬 10:2-3). 그래서 경건보다 더 경건한 것은 불경이며, 빛보다 더 밝은 빛은 어둠이고, 하나님보다 더 하나님인 체 하는 것은 사탄이다(살후 2:4). 더 경건한 것이나 더 밝은 빛, 그리고 더 하나님인 체 하는 것에 대하여 부러움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집요하게 따지는 외식함과 거짓말과 화인 맞은 양심이란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내려는 인본주의적인 시도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빛에 가까운 어둠도 문제이지만 빛보다 더 밝은 빛도 문제라는 것이다. 진짜 같은 가짜도 위험한 것이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도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진리 곁에 있는 거짓을 경계해야 하는 것만큼 진리보다 더 진리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열심은 인간적인 생각


디모데 앞에 등장한 어떤 사람들은 혼인을 금지하고 음식을 폐지했다. 이것은 얼마나 경건하고 신앙적으로 보이는가. 남다른 경건과 엄청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고는 혼인을 금하 음식을 폐하는 이런 강렬한 행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놀라운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사도 바울이 이 사람들의 독신추구와 금식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들의 독신과 금식이 오류라는 것을 반영하듯이 디모데전서 여기저기에서 혼인하는 것과 섭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천명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한 아내의 남편인 것(3:2), 한 남편의 아내인 것(5:9)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말하며, 심지어 젊은 여자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라고 권면했다(5:14). 또한 사도 바울은 먹을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자족할 줄 아는 자세를 요구하였고(6:8), 이 단락에서는 아주 간명하게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4:3).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움이 돋보여

사실 경우에 따라서 사도 바울에게는 독신이나 금식이 경건과 신앙의 분량이나 정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은사나 기능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이기에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다(고전 7:7). 고기와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는 기능에 적합한 것이다(롬 14:21; 고전 8:13). 그렇기 때문에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는 것이 열심있는 경건과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본주의이다. 만일 독신과 금식이 그런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경건이 아니라 불경건과 신앙이 아니라 비신앙이다.


근본적으로 볼 때 교회가 싸워야 할 대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압축하면 교회의 싸움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달하는 것과 과월하는 것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단지 말씀이 가는 곳에 가고 말씀이 서는 곳에 설 때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