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금식사경회에 동참하라! (느9:1-5)

새벽지기1 2016. 12. 11. 22:41


본문

1.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4.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서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느헤미야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느혜미야서는 성벽 재건의 책입니다.

페르시아의 대신이었던 느혜미야는 BC왕이 허락을 얻어

42,360명의 동포들을 이끌고 귀국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벽재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었습니다.

마침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문앞 광장에 모여 성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문 앞 광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남동쪽 문 앞의 광장으로 곧 기드론 골자기 기혼 샘 옆의 광장입니다.

당시 이 광장은 성회 뿐만아니라 재판과 공회가 열리던 성읍의 중심지였습니다.

집회는 느혜미야와 에스라가 주관하에 일주일간 계속되었습니다(8:18).

이것이 느헤미야 8장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초막절이 끝난 이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모였습니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1)”

아니 일주일간이나 집회를 했는데 또 다시 왜 모였을까요?

이것이 바로 영적 부흥의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동안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지체들이 있었습니다.

왜 수련회를 꼭해야 하나요?”

꼭 금식을 해야 하나요?”

저는 그 답이 느헤미야 8-9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집회를 통해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주 후면 34일간 금식사경회가 열립니다.

오늘은 금식사경회를 앞두고

우리가 왜 금식사경회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론

 

그러면 우리는 왜 금식사경회에 참여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 각자 자기 갱신(更新)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갱신(-고칠갱 -새로울 신)’이란?

사전적 의미로 이미 있는 제도나 기구 따위를 고쳐서 새롭게 함이란 뜻입니다.

이는 사경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성 집회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 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니다.

그들 스스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들이 금식한 것은 그 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 이방사람들과 절교했습니다.

이방 사람들과 절교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절교했다는 말일까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며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입니다.

출애굽기 19:6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살던 여러 이방 민족과 결혼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예컨대 이런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느헤이먀1323-25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절 말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노천 광장에 모여 이렇게 성회를 열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새롭게 경신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처해있고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정공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정책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의 치열한 경쟁자들입니다.

경제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미래는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저와 여러분과 무슨 관계냐 할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은 밀접하나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된 이면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이 민족의 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1.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2.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백성이 방종에 빠짐)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사라짐)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시대 상황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바벨론을 들어 자기 백성을 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먼저 우리의 죄를 스스로 자복하고 회개할 때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전반을 돌아보고 경신 해야 할 때입니다.

나아가 민족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이런 회개는 평소 우리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금식사경회를 통해 공동체가 함께 힘써 하나님께 무릎으로 나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사경회가 우리의 영적 갱신의 계기가 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금식사경회에 참여해야 할까요?

둘째, 성경 말씀을 집중하여 연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경회(査經會)?

직역하면 성경을 조사한다는 뜻으로 영어의 ‘Bible study’아 같습니다.

교회 용어사전에는

연례적으로 특별강사를 초빙하여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기본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고 수일간에 걸쳐 성경공부를 하며 은혜 받는 집회.

교인들이 모여 성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영적 각성과 생활의 쇄신을 도모하고 신앙심을 깊게 하여 교회의 질적 성장과 불신자 전도의 능력 배양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말한다(5:39; 17:11; 4:32; 43: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경회는 회중이 성경 말씀과 기도에 온전히 집중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 사경회는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주로 행해진 성경공부 집회로

890년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의 사랑채에서 열린 사경회가 최초의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사경회 모습은 어땠을까요?

사경회에 참석하려는 선배들의 신앙은 눈물겨웠습니다.

이만열 위원장(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1901년 평양에서 열린 여자 사경회에는 150리에서 3백리 이상 떨어진 삭주 창성 의주 지역에서도 몇 주일 동안 먹을 쌀과 옷을 짊어지고 왔다. 다음해에 평양에서 열린 '사나히 사경회'에는 4백명 가량이 모였는데, 이들 지역뿐 아니라 황해도와 서울, 전라도 목포 무안에서도 올라왔습니다.

특히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자립' 정신에 따라 참석자들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사경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곽안련 선교사는 1910년 자기가 인도한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여행비와 체류 비용을 부담하면서 강원도 동해안에서 200마일(리로 환산해라)을 걸어온 14명을 소개했다. 그는 먼 거리에서 오는 교인들의 경우 쌀자루나 땔감을 지거나 이고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고 증언했습다.

말씀을 연구하고 강연과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은 이들은 과거 자기가 도둑질한 물건이나 돈을 돌려주고, 교회 안팎에서 범한 죄악을 토로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사경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1/4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전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경회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는 곳이 바로 83, 6입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3-새벽부터 정오까지(오전 내내) 하나님이 말씀을 읽었다는 것과

6-모든 백성이 아멘 아멘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88-9절을 좀 더 보겠습니다.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며, 우리에게 성회의 유익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사경회를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일주일간이나 사경회가 계속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다시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번 금식사경회는 <복음서 조감>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잊지 못할 거룩한 추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사모함으로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금식사경회에 참여해야 할까요?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왜 꼭 금식사경회를 해야 할까요?

그냥 말씀 사경회를 하면 안 될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년 금식하는 거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금식의 영성은 포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금식의 영성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역의 준비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사십 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4:2)'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금식을 하셨을까?

그 이유는 앞으로의 사역의 중요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사역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제자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의 쓴 잔을 마시지 않은 제자가 어찌 십자가의 고난을 증거하겠습니까?

우리가 사역적 측면에서 금식수련회를 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식의 영성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7)”

매년 금식사경회를 앞두고 금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는 지체들이 있는 줄 압니다.

누구든지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냉철이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말합니다.

결코 십자가의 고난을 잊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 중에는 은혜 받았다고 하며

제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고난 주간에 금식한끼 않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금식은 극기 훈련이나 자기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자기 의사 관철도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금식은 헛것입니다.

금식은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금식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결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앞에서도 언급 했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엄중합니다.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제자는 선지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지자적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목사, 가지장의 직분은 영광된 것입니다.

위대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을 위해 먼저 무릎 꿇어야 할 때입니다.

 

제가 오늘 종강 채플도 아닌데 금식 사경회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은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사모함으로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모한 만큼 은혜와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20017년은 20016년과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햇가지장 때와 작은가지장 때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지원 때와 가지장 때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절대로 달라야 합니다.

비록 34일간의 짧은 금식이지만

분명 영적으로 의미 있는 금식수련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 사모함으로 지체 없이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